[최광범의 미디어비평] ‘심심한 사과’, 교환해주세요

2022.09.01 06:00:00 13면


‘불편을 끼쳐 드린 점 다시 한번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심심한’ 이란 단어가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젊은 세대의 어휘력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루한 사과’로 오해한 젊은 세대를 향해 나이 든 세대가 ‘이런 단어도 모른단 말이야?’라며 거드름을 피운다. 


필자도 한 축하행사에서 옆 자리 안면 있는 대학 교수에게 기성 세대 눈으로 이 말을 꺼냈다가 핀잔을 들었다. ‘심심한’을 ‘깊은’으로 바꾸면 누구나 다 알 것 아니냐는 주장이었다. 나의 의견에 동조해 주지 않아 서운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혼자 생각해보니 ‘나도 역시 꼰대가 되고 있구나’라고 반성했다. 역시 젊은 세대를 가르치는 직업이라 달랐다. 


젊은 사람들이 쓰는 말 가운데 뜻을 몰라 ‘그 뜻이 뭐야?’라고 묻는 경우가 종종 있다. ‘킹받을’ 때(열받을 때)’, ‘존맛탱(아주 맛있다)’, 헬창(헬스 매니아) 등이 이런 말들이다. 언론도 유행어 유통에 크게 일조한다. 정치권에서 한 말이 언론을 타면 일상어가 된다. ‘개딸(개혁의 딸)’, ‘이대남(20대 남자)’처럼. 해외 언론도 우리 언어를 번역하기보다 소리 나는 대로 쓰는 경우가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서울의 집중호우 피해를 보도하면서 반지하를 ‘banjiha’로, 위키백과는 꼰대를 ‘kkondae’로 등재했다. 


이런 말들은 언어생활을 윤택하게 하기도 하지만, 다른 세대들이 쓰지 않은 어려운 말로 소통을 어렵게 한다. 어느 쪽이 옳다고 하기 어렵다. 다만 언론은 보편적이고 쉬운 용어를 써야 하는 게 맞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을 역임했던 김상균 전 MBC 기자는 지난 11일 ‘좋은기사 연구모임’(회장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에 나와 어려운 방송언어 개선을 주문했다. ‘내홍(내분 혹은 집안싸움)’, ‘정체현상’ 같은 어려운 한자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꿔 쓸 것을 제안했다. 또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처럼 전문가도 검색해야 알 정도의 어려운 용어를 설명 없이 무분별하게 쓰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특히, 취재원이 제공하는 용어를 그대로 따라가는 법조 관련 기사는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찰청의 장은 ‘검찰청장’이어야 하는데 ‘검찰총장’이라고 쓰면서도 문제의식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변화의 조짐도 있다며, MBC 김아영 기자의 보도를 주목해보라고 권했다. 문장 읽기식 보도방식을 철저히 거부한다. 옆에 사람들과 대화하는 듯한 보도방식이다. 마치 시청자가 기자에게 상세한 설명을 듣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지난 2월 고인이 된 이어령 문화부 장관은 장관 재직 중 가장 잘한 일로 ‘노변’을 ‘갓길’로 만든 일이라고 했다. 조선비즈 김지수 문화전문기자가 지난해 10월 암투병 중이었던 고인을 매주 화요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엮은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 언급된 내용이다. 생활 언어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언어는 소통의 도구일 때 최고의 존재가치가 있다.    

최광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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