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 속 세계사] ‘우주로 가는 소국, 룩셈부르크’

2022.09.19 06:00:00 13면

 

교통요금이 무료인 나라가 있다. 버스, 기차같은 대중교통요금을 내지 않고 전국 어디든 다닐 수 있다. 룩셈부르크 얘기다.

 

선진국 대열에 든 우리나라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전격 시행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교통난 때문이었다. 약 60만명의 인구가 사는 룩셈부르크는 인구 1000명당 696대의 자동차를 소유(2020년 조사기준)하고 있어 유럽대륙에서 차량 밀도가 가장 높다. 대중교통 무료화는 자동차 사용 인구를 줄이기 위한 극단 방책이었다.

 

인구 밀도가 아닌, 차량 밀도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 생활수준이 높다는 이야기다.

 

룩셈부르크의 경제 수준은 중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유럽의 소강국 베네룩스’라는 소개로 익히 배운 바 있다. 현재는 그 정도가 아니라 1인당 GDP 11만5000달러의 최고수준의 부국이다. 서울시의 4배 정도 되는 2586제곱킬로미터의 작은 면적의 소국이며, 19세기 중반까지 가난한 농업국이었던 룩셈부르크. 게다가 유럽 북서부에 위치, 동쪽으로는 독일, 북쪽으로는 벨기에, 남쪽으로는 프랑스에 접해있어 강대국 틈바구니에 끼어있는 이 작은 나라가 어떻게 전쟁으로 점철된 유럽역사 속에서 버텨내 오늘에 이른 것일까.

 

룩셈부르크 이름부터 약소국의 설움이 묻어있다.

 

게르만부족 중 하나인 트레베리족을 조상으로 둔 룩셈부르크의 고대사는 로마, 프랑크 왕국 등의 침탈로 얼룩져있다. 프랑크 왕국은 현재의 룩셈부르크시에 위치한 복(Bock)바위에 성채를 지어 루실르부루후스(Lucilinburhuc)라 불렀는데(고대 독일어로 ‘작은 성’이란 뜻), 여기서 룩셈부르크라는 국가명이 나왔다. 이름처럼 작은 성의 나라 룩셈부르크는 이후에도 합스부르크가, 스페인, 프랑스, 오스트리아의 손아귀에 놀아나야했고 세계 1, 2차 대전 때는 독일에 점령당했다. 룩셈부르크 부흥은 철강 산업이 시작이었다. 70년대, 철강 산업이 쇠퇴하자 발빠르게 금융 산업에 뛰어든다. 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 세금 환경 등을 글로벌 기준 이상으로 바꾸어 런던, 뉴욕, 프랑크푸르트처럼 금융허브국으로 변신한다. 2000년부터는 ICT(컴퓨터 기반 정보기술) 산업으로 전환해 정보부국으로 자리매김하더니, 현재는 우주 자원 채굴 등 우주산업에 매진,(룩셈부르크에는 70여개의 우주산업 관련 기업, 기관이 있다) 우주 강국을 예고하고 있다. 소국이라 속전속결할 수 있는 장점을 최대치로 살려 오늘날의 위상을 만들었다.

 

소국의 그림자! 경제 말고는 룩셈부르크를 세상에 내세울 상징이 많지 않다. 한 모임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누군가 ‘로자 룩셈부르크’라고 농담을 던져 함께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음악 강의를 하는 나로서는 유럽 최대 가요축제인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아일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최다 우승자를 낸 국가로 룩셈부르크를 기억한다. (아일랜드 7회, 룩셈부르크 5회, 영국 5회) 그 중, 그리스 출신이지만 룩셈부르크 대표로 나왔던 비키 레안드로스(Vicky Leandros 1949년 그리스 출생)의 ‘사랑은 푸른 빛’(L’amour est bleu)은 자주 들었던 노래다. 67년, 제12회 대회에서 4위였던 곡이 세계적인 히트를 친 배경에는 폴 모리아(Paul Mauriat)오케스트라가 있었다. 비키의 곡을 Love is blue라는 영어명 연주곡으로 편곡해 빌보드 1위까지 올렸다. 명성과 관계없이 그 노래는 내게 60년대에 무대에 처음 선 열일곱 비키의 앳된 목소리로 저장돼 있다. 우주로 향하는 룩셈부르크는 점점 젊어지고 화려해지는 듯한데, 70넘은 비키는 이제 주름이 가득하다. 무상하다.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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