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 세계사] ‘스페인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2022.10.24 06:00:00 13면

 

한 곡의 음악이 여행을 부르기도 한다. 기타곡,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그 예다.

 

스페인을 처음 여행했을 때 3박 4일의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남단 도시 그라나다까지 간 것은 그 연주곡의 탄생지를 직접 딛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곡을 만든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 1852-1909)의 작곡 배경을 들으면 음악이 더 사무친다. 타레가는 음악을 배운 제자, 콘차 부인을 사랑하게 된다. 유부녀였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고백조차 못한 상처를 품고 여행길에 오른 타레가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 이른다. 사랑에 빠지면 아름다운 모든 것은 임을 떠올리게 한다. 어둠 내린 알함브라 궁전 위에 뜬 달을 바라보다, 콘차 부인을 생각한 타레가. 그 풍경이 가락을 만들어냈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탄생시킨다.

 

사연을 알고 들으면 옥구슬 굴리는 듯한 트레몰로(Tremolo)멜로디가 타레가의 눈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표현한 듯 느껴진다. 타레가의 작품과 연주는 19세기까지 별 볼일 없는 악기였던 기타의 황금시대를 열었는데, 그 중심에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있다.

 

알함브라 궁전은 스페인 영욕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 중 하나다.

 

기원전 13세기 이후,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인에 이어 로마인의 땅이 된 이베리아 반도는 기원 후 5세기에는 게르만족 일파인 서고트족에 점령된다.

 

711년, 북부 아프리카의 무어족, 우마이야 왕조가 바다를 건너 침탈,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왕국을 세운다. 이슬람 세력에 의해 북쪽 끝으로 쫓겨간 이베리아 반도의 주민들은 기독교 깃발을 꽂은 작은 왕국들을 건설, 길고 긴 국토회복 전쟁을 시작한다. 이를 레콩키스타(Reconquista)라 한다. 800년 가까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던 이슬람 세력은 13세기 초반, 북쪽에서 힘을 키워온 기독교 연합군에게 대패하고, 14세기 초반, 최남단의 그라나다 왕국만 남기고 쫓겨난다. 알함브라 궁전은 그라나다의 술탄 무함마드 1세가 1238년, 수도를 건설하기 시작, 100여 년간에 거쳐 형성한 곳이다. 1492년, 스페인 연합왕국은 그라나다 왕국마저 멸망시켜 레콩키스타를 완성한다.

 

레콩키스타 이후, 스페인의 피바람 나는 역사가 시작된다. 자국 내에서는 종교 재판소를 만들어 이슬람, 유대인 등을 박해했고, 나라 밖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 원주민들을 대거 살상하며 식민지화한다. (1492년, 이사벨 1세 여왕의 후원을 받은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침략이 시작이었다 ) 막대한 아메리카 식민지에 네덜란드, 포르투칼 등을 점령, 16세기 들어서 초강대국이 된 스페인의 내리막은 1588년, 영국과의 전쟁, 1618년의 30년 종교전쟁 참전 등, 잦은 전쟁으로 인한 것이었다. 설상가상, 아메리카 각지의 독립운동으로 돈줄이었던 식민지를 상실해 가던 와중, 1898년 쿠바 독립을 둘러싼 미국과의 전쟁에서 완패, 결국 영국보다 먼저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였던 스페인의 시대는 저문다.

 

세계 양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아 전쟁의 참화는 피했지만,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의 쿠데타에 의한 약 3년간의 스페인 내전, 이후 38년간의 프랑코 독재정권 시대 등 참혹한 시절을 겪어야 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은 프랑코의 사망 후, 그 뒤를 이은 후안 카를로스 1세 왕이 입헌군주제를 확립하는 신헌법을 받아들이면서다.

 

전쟁과 식민, 독재, 식민지 학살 등으로 피비린내 나는 스페인의 역사를 알고 나면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타레가의 사랑음악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인터넷 창에서 www. 월드뮤직. 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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