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적폐 청산’과 ‘정치보복’ 사이

2022.10.26 06:00:00 13면

 

 

미사일이 마구 날아다니고, 총알이 우박처럼 쏟아지네요. 청백 군사들이 호시탐탐 상대방의 심장을 노려 일격필살의 승기를 잡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날뛰는 모습이 험악하군요. 이러다가 정말 큰 변고를 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가 수시로 엄습해요. 러시아 침공으로 참혹한 전장이 돼버린 우크라이나 풍경이냐고요? 아니에요. 최근 여야 정쟁이 깊어지고 있는 우리 정치권 이야기에요.

 

‘적폐 청산’은 사전적으로 ‘과거의 쌓아온 폐단을 없앤다’는 용어예요. 그런데 우리 국민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살짝 다른 의미로 느껴왔지요. 문재인 정권이 내세운 ‘적폐 청산’ 구호는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국면과 맞아떨어지면서 반론의 여지가 좁았어요. 그 시절 속절없이 당해야 했던 보수 야당은 사뭇 ‘정치보복’이라며 부글부글 끓었지만요.

 

지난 3월 대선으로 정권교체가 된 이후 공수(攻守)가 뒤바뀐 정치권은 처음부터 시커먼 전운(戰雲)을 피워올렸지요. 대선 전부터 각종 논란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야당 대표를 겨냥한 사법기관의 수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네요. 후보 경선 때 불거진 의혹을 중심으로 공세가 이뤄지고 있으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겠군요. 이번에는 민주당에서 ‘정치보복’, ‘야당 탄압’이라는 반발이 터져 나오네요.

 

오래전에 했던 말들이 동영상과 함께 수시로 리플레이(Replay)되는 시대여서 정치인들이 더욱 곤혹스럽게 됐어요. 여당은 야당 시절, 야당은 야당 시절 내뱉은 말들이 저장장치에 산처럼 쌓여 있다가 즉각 즉각 톡톡 튀어나오니 이만저만 난감한 노릇이 아닐 거예요. 공수 교대로 역할이 바뀌면 대사도 뒤집힐 수밖에 없지요. 더욱이 5년 전 적폐 청산에 앞장섰던 법 기술자들이 새 권력의 중심에 섰잖아요.

 

신기한 것은 여야 정치인들이 모두 작금의 상황을 ‘적폐 청산’이라고는 안 부른다는 사실이에요. 그동안 해온 말 이력이 있으니 여당은 자칫 ‘야당 탄압’이라는 야당 공세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이 있을 거예요. 집권 시 “적폐 청산은 결코 정치보복이 아니다”라고 수없이 외쳐왔던 민주당은 더욱 그렇겠지요. 어쨌든 요즘 정치권의 무한 정쟁이 민초들의 벼랑 끝 민생문제에 어떤 해법이 될 것 같은 전망은 없어요.

 

‘민주주의’는 장구한 세월 야만적인 학살극을 종식하고자 창안해낸 인류의 최고 발명품(?)이라고 일컬어 지지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사법기관을 장악한 집권당이 ‘새 물’로 ‘헌 물’을 씻어내듯 전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일지도 몰라요. 정권교체의 역사가 훨씬 더 많이 쌓인다면 우리도 진정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걸까요? 하지만 조작·공작을 통한 사악한 ‘정치보복’만큼은 절대로 안 돼요. 돌아가는 꼴을 보니, 우리 국민은 ‘적폐 청산’과 ‘정치보복’ 사이에서 애꿎은 마음고생을 한참 더 해야 할 것 같네요.

안휘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