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일의 오지랖] 해병 병장 ‘임정국’

2022.10.31 06:00:00 13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공간적 단절은 사람들에게 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생산해 냈다. 지난 3년은 각자의 마음에 깊이 자리하거나 또는 삶에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았던 코로나19 상황도 조금씩 종식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활기를 찾고 코로나19의 대표적 제재 대상이었던 해외여행도 시작되었다. 아마도 공간적 단절의 대표적 사례가 해외여행의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때마침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내게도 베트남을 가야 할 일이 생겼기에 오래전부터 꼭 방문하기로 마음먹은 장소를 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한국인에게 베트남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알려진 다낭의 시골 마을인 퐁니퐁넛(Phong Nhi and Phong Nhat massacre)이었다. 내가 이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한 응우옌티탄(학살 당시 8세)씨와 남베트남군으로서 직접 학살을 목격했던 응우옌득쩌이(학살당시 28세)씨를 TV에서 보고 난 이후였다. 그들은 한국의 해병대에 의해 상해를 입은 피해자들로서 한국정부에게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방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내게는 다낭의 시골마을인 퐁니퐁넛을 방문하고자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내가 세 살 되던 해에 돌아가신 아버님은 베트남에서 전투중에 심각한 부상을 입으셨고 그 장소가 퐁니퐁넛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9일, 다낭의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다. 나는 공항에서 나와 호텔에 짐을 던져 놓고, 예약해 두었던 자동차를 타고 퐁니퐁넛에 있는 위령비로 향했다. 호텔에서 40분쯤 달려 위령비 근처에 도착했지만 정확한 위치가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인인 자동차 기사도 몇 번을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찾았다. 민간인 학살 위령비를 처음 마주한 내 느낌은 매우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논 한쪽 귀퉁이 자리한 위령탑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된 듯했고 위령탑까지 이어진 작은 농로는 소똥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만약 민간인 학살에 대한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화해가 있기를 바라는 누군가 있다면 지속적으로 관리하여 미래의 평화를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한 베트남 사람들과 국군을 위해 잠시 기도를 드렸다.

 

결국 한국군에 의해 위중한 피해를 입었던 그들과, 20대 초반의 나이에 낯선 베트남에서 전투를 하다가 결국 생을 달리한 내 아버님,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었다. 나는 내 아버님의 마지막 전투가 매우 궁금하지만 알지 못한다. 누구도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데 누구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 1968년 전후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해병병장 임정국’님을 아는 전우라도 만나 뵙고 그날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으면 좋겠다.

 

임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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