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고경명

2022.11.03 06:00:00 13면

 

제봉 고경명( 霽峰 高敬命. 1533~1592). 큰 시인이요, 의병장이었다. 장흥이 본관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조선의 고위관료를 지냈다. 약관 스물에 진사시험 장원, 스물 여섯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영광은 예외 없이 고난을 수반한다. 사시사철 온몸에 질투와 시기의 화살을 맞기 때문이다.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제봉은 승승장구하다가 임관 5년만에 정치사건에 휘말렸다. 파직되어 낙향한다. 31세였다. 이후 약 20년 동안 우리 문학사에서 창공의 별과 같은 호남 최고의 문인들과 교류하며 1300수에 달하는 시를 지었다. 제봉집에 담겨있다. 고봉 기대승, 송강 정철, 백호 임제, 손곡 이달,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서하당 김성원 등과 교류했다. 

 

고경명은 명종의 총애를 받았다. 당연히 요직에 봉해졌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가슴 뜨거운 충절지사에게 불패의 탄탄대로는 없다. 두 차례의 파직을 겪었다. 우국애민(憂國愛民)정신과 자부심만큼 좌절과 회한도 깊고 컸다. 홍안의 청년이 백발이 서리로 내린 초로(初老)가 되었다.

 

바로 이 때, 조총을 든 20만 명의 왜군이 부산에 상륙했다. 1592년 4월. '朝日 7년 전쟁'(임진왜란)이 시작된 것이다. 왜군들은 보름만에 파죽지세로 한양을 점령하였다. '머저리' 선조는 북쪽으로 도망쳤다. '왕초'가 이 따위면 없는 게 낫다. 영웅은 그 절망의 시간에 등장하여 역사가 된다.

 

고경명은 임진년 1592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길을 택하였다. 그 해 제봉의 나이, 60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80쯤이다. 나랏님의 은덕을 입은 선비로서, 공맹을 공부한 유생으로서, 자부심 높은 지식인으로서, 지행일치의 인격자로서, 제봉은 '세독충정'(世篤忠貞:대대로 독실하고 진정하게 우국애민의 충성을 다함)의 신념을 실천할 기회 앞에 선 것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함석헌은 창의구국(倡義救國)의 횃불을 높이들고 6000명 넘는 의병을 모아 금산성에서 각각 장렬한 최후를 마친 고경명과 차남 고인후, 진주성 전투에서 남강에 투신 순절한 장남 고종후의 죽음을 삼종사(三從死)라고 했다. 실은 제봉 가문은 이 전쟁에서 9명이 순국했다. 

 

안동 임청각의 석주 이상룡(상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집안과 제봉 고경명 집안은 이미 임진왜란 때부터 400년 동안 사돈간이다. 제봉의 장남 고종후가 석주의 14대조 고모와 가정을 이뤘다. 영호남의 항일 독립운동 명문가의 이 혼사는 소중한 연구과제다. 고경명의 후손들은 집안자랑을 하지 않는 가풍이 있다고 한다. 

 

지난 10월 18일 광주에서 <의병장 제봉 고경명 선생 순국 제 430년 추모학술대회>가 열렸다. 인문연구원 '冬孤松'의 유미정 박사는 '제봉 고경명 선생의 交遊詩에 담긴 詩情연구'를 발표하여 '시인 고경명' 본격연구의 큰 문을 열었다. 그는 "호남 의인들에게 전해온 文人 제봉의 순절은 학행일치의 한 면을 보였고, 그 후 한말 호남의병 녹천 고광순(제봉의 12대손)이나 광주학생독립운동가, 독재에 맞선 민주열사들, 5•18까지 호남 정신의 맥을 이어오게 했다" 고 평가했다. 

 

"세상사람들은 남쪽지방에 시인이 많으나 고제봉이 제일이라 한다. 임진왜란 때 남쪽에 의병이 많았으나, 역시 제봉이 창도하였다." 영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1556~1648)의 평이다. 상식과 교양, 양심과 구국충정의 리더십을 볼 수 없는 이 야만의 시대에, 제봉 고경명은 우리 모두의 등대다.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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