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 세계사] '세계대전을 울린 노래, 릴리 마를렌'     

2022.11.14 06:00:00 13면

 

 

이 노랫말을 들어보시길.

 

병영 앞 대문 앞에 가로등이 켜져 있네/ 여전히 그 앞에 서 있는 그녀/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나려 하네/ 가로등 곁에 서 있고자 하네/ 예전에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 예전에 릴리 마를렌이 그랬듯이…후략…

 

단박에 사랑 노래라는 것, 릴리 마를렌이 사랑하는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기존 가요 가사와 별다른 것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야기 하나 들어보시길.


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패퇴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던 미군 병사가 독일군 저격병에게 잡힌다. 미군 병사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 소원 하나만 들어달라고 청한다. 미군 병사는 지니고 있던 트럼펫을 꺼내 생애 마지막 연주를 한다. 독일군의 손에  쥐어진 총구가 흔들리고 그의 뺨에 눈물이 번진다. 연주가 끝나자 독일 병사는 총을 버리고 가버렸다는 이야기. 미군병사가 연주한, 죽음에서 그를 구한 곡은  앞서 소개된 '릴리 마를렌(Lili Marleen)'이었다.


독일의 사랑 노래 '릴리 마를렌'은 두 군인의 마음만 흔든 곡이 아니다. 2차 대전 중 수많은 군인들을 울렸다.

 

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1915년.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독일병사 한스 라이프(Hans Leip)는 고향의 애인 릴리와  닮은 전쟁터의 간호사 마를렌을 보고 한 편의 시를 쓴다. 시의 제목은 ''등불 아래 소녀'. 작곡가 노르베르트 슐체는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들었고 1939년, 가수 랄레 안델젠(Lale Andersen)의 목소리로 레코드판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2차 대전이 불붙은 시기인데다 레코드판을 고작 700장만 만들었기에 주목은커녕 이슬처럼 사라지고 말 운명의 노래였다. 1941년,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한 독일 군대는 베오그라드에 독일군 방송국을 만든다. 장교 한 사람이 방송에 틀 생각으로 비엔나에서 중고레코드판들을 사왔는데 그 가운데 릴리 마를렌이 끼어있었다. 판이 부족한 터라 릴리 마를렌을 자주 틀게 되었는데 이 노래가 독일 병사들을 흔든다. 병사들은 릴리 마를렌을 들으며 고향의 애인, 어머니 등 그리운 이들을 떠올렸고,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의 공포와 시름을 달랬다. 이를 안 나치 독일 선전부의 요제프 괴벨스는 아군의 전의를 상실시키는 곡이라고 방송금지령을 내리고 원곡을 부른 가수 안델젠을 체포 한다. 그러자 방송국으로 릴리 마를렌을 틀어달라는 병사들의 신청과 항의가 쇄도, 결국 괴벨스는 금지를 푼다. 릴리 마를렌은 그 이후, 매일 밤 9시 55분, 방송을 끝내는 시그널 음악으로까지 만들어졌으니 그 인기가 짐작이 간다.  노래는 자국 병사들 뿐 아니라 독일방송을 도청하던 미군과 영국군 등 적군의 진영까지 열병처럼 퍼져나갔다. 나치 선전부는 이를 알고 이 노래를 적군의 향수병을 자극해 사기를 떨어뜨리는 수단으로 이용한다.  적의 진영을 향해 수시로 이 노래를 틀어댄 것이다. 그러자 연합국 쪽에서 한술 더 떠 독일 최고 인기 여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목소리로  릴리 마를렌을 틀어댔다. 헤밍웨이가 '남자들은 그 목소리만 들어도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말한 그 여배우, 디트리히 말이다. (디트리히는 반나치주의자였다)


한 곡의 노래가 전쟁터를 흔들고 아군과 적군의 경계마저 지웠다. 세계 전쟁사에서 유래 없는 일이었다.


릴리 마를렌이 왜 그토록 많은 병사들의 가슴을 파고들었을까? 


처음 노래를 불렀던 랄레 안델젠은 한 기자의 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바람이 왜 폭풍이 되는지 설명할 수 있나요?'

 

이 노래는 전쟁 후 40여개 나라 말로 번역돼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는데, 디트리히의 목소리가 최고다. 그녀의 노래를 들으면서 안델젠의 말을 되새겨 보시길. 


(인터넷 창에서 www. 월드뮤직. 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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