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돌고성(孤聲)] 막사이사이 대통령 같은 지도자를

2023.01.05 06:00:00 13면

 

 

한때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모범적 선진국이었다. 그 중심에는 막사이사이(Ramon Magsaysay: 1907-1957) 대통령이 있었다. 가난한 고학생 출신인 그가 하숙집 주인의 운전기사로 일하며 야간대학을 마쳤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이다. 일본의 필리핀 침략에 자원입대하여 게릴라전에 참여한 그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명성을 쌓고 전후 지역의 군정장관을 거쳐서 국방장관에 올랐다.

 

국방장관 재임 시에는 부패한 군 지휘관을 숙청하고 정직한 군인을 우대하였다. 공산반군의 거점인 후크발라합 지역의 게릴라들을 진압할 때는 귀순자들에게는 토지와 농기구를 마련해주고 정부군에게는 그들을 무시하지 말고 정중하게 대하도록 명령했다. 농민의 성원 없이는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이즈음이었다. 1953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그는 대통령취임식에 관용차인 크라이슬러 리무진을 거절하고 중고차를 빌려 타고 입장했다. 대통령이 거처인 말라카냥궁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해 서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찾아와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게 했고 가족과 친지들에게는 어떠한 혜택도 거절하였으며 도로, 교량, 건물들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못 하게 했다.

 

가난한 농민 위주의 토지개혁안이 부유층의 대변자였던 의회의 반대로 무산되자 그는 반대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설득했다. 이렇게 서민을 위한 그의 행보는 끝이 없었다. 손수 차를 몰고 다니다가 눈에 띄는 시골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는 대통령의 모습은 흔히 목격되었다. 아직도 필리핀 곳곳에는 ‘막사이사이 우물’이 있는데 모두 그가 빈민가와 낙후된 지역을 다니면서 설치한 공동우물의 이름이다.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던 그가 사망한 이후 필리핀의 국격은 급전직하로 떨어졌다. 이후 정치지도자들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 때문이었다.

 

2023년 대한민국의 앞날이 어둡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안보, 외교, 경제 등등 사회 곳곳에 암초가 깔렸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지도자의 행태이다. 그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국민의 성원과 지지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남북은 화해의 대상이지 증오의 상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가진 지도자. 노동자는 우리 산업의 역군이지 결코 기득권에 안주한 세력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서민들은 따듯한 가슴으로 안아 주어야 할 대상이라고 확신하며, 자신보다 국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일념으로 10.29 참사의 유가족이 가장 크게 위로받아야 할 아픈 사람임을 아는 지도자. 국민을 사랑하는 지도자야말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막사이사이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막사이사이가 1957년 사망했을 때도 한밤중에 아들이 군에서 총기사고로 사망했다는 국민의 안타까운 전화를 받고 직접 비행기 시찰을 나섰다가 당한 사고였다고 한다. 우린 이런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없는 민족인가? 우리도 이런 지도자로 바뀌는 꿈을 꾸며 대망의 2023년을 맞이해 보자.

임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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