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인기들이 서울 상공을 침범한 사건을 전후로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전쟁 준비’, ‘핵전쟁 불사’와 같은 강경 발언을 토해냈다. 2018년 이후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불었던 한반도 평화 무드는 이 정부 들어 일전불사의 전쟁 위기로 치달으면서 깨졌다.
대통령의 이 발언들은 물론 공허한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르면 한반도에서의 전쟁 개시권이 미국에 부여돼 있을 뿐 우리의 군사주권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1조는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이 주권재민의 대원칙은 방위조약 앞에서 무력하다. 조약 4조에는 “한-미 상호합의에 근거해 미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돼 있다. 미국은 군사력의 반입과 반출, 배치, 전개와 관련해 한국 정부의 어떠한 동의도 받을 필요가 없다. 조약 하위법인 주둔군지위협정과 방위비분담특별협정 관련 조항들도 주권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 문제투성이다. 주한미군의 시설, 구역, 경비에 관한 부담을 한국이 져야 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새 이전지인 평택 기지가 우리 돈으로 전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졌던 것도 그 규정에 따른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주한미군 기능이 오래전 전략이동군으로 변경된 뒤 평택기지가 태평양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지휘부 노릇을 하고 있다는 데 있다. 북한 위협과 함께 중국과 대만, 중국과 일본 간 충돌에 대한 군사적 역할도 주한미군에게 주어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추진 중인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 땅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킨다. 이 구상은 일본이 대 태평양 군사전략 실행에 따른 미국측 부담을 떠안는 대신 동북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양해하는, 우리로선 매우 위험한 전략이다. 미-일이 동북아와 아시아 전역에서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것인데, 이 전략은 일본을 군사 대국으로 만들겠다는 양국 극우세력들의 의도에도 부합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한국이 이 동맹의 하위 단위로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주변국 사이의 군사적 충돌의 경우에도 한반도는 전쟁에 곧바로 휩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겉으로는 북한의 핵 보유를 반대하는 시늉을 하지만 기실 그 존재를 은근히 즐기고 있는 눈치다. 북핵이야말로 동맹국 일본의 군비증강을 정당화할 구실인 동시에 남한을 중국에 대한 전초 군사기지로 활용하는 데 더 없는 호재이기 때문이다. 지난번 북-미 간 하노이회담 결렬은 미국을 움직이는 군산복합체의 반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회담 성사로 인한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죽음의 무기상’인 이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더 이상 미국과의 담판을 통한 핵 협상을 하진 않을 것 같다. 현재 북-미 간 긴장이 높아져 미국은 전략자산 증강을 비롯한 대규모 군사연습에 나섰고, 북한도 이에 맞서 수십 차례에 걸친 중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한반도 전체가 마치 기름을 부은 섶과 같아서 누군가 불만 당기면 금방 불바다로 변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동시 절멸의 참혹한 전쟁 위기에서 민족을 구하고 평화를 지켜내야 한다. 그러려면 군사주권부터 찾아와야 한다. 한-미 방위조약을 호혜-평등의 원칙에 걸맞게 개정하는 것이 평화 만들기의 첫걸음이다. 군사주권을 이민족에 맡겨 민족이 엄청난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했던 구 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