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 박주환’이 모은 걸작을 한자리에…특별전 ‘동녘에서 거닐다’

2023.05.25 09:19:25 16면

‘동산 박주환 컬렉션’ 기증작 209점 중 90여 점 선봬
해강 김규진에서 유근택까지 작가 57인 작품 출품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화 흐름 조명
2024년 2월 12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 부친은 거창하게 화랑을 시작한 것이 아닌 먹고 살기 위해, 생계를 위해 미술계에 뛰어들어 평생을 일 하셨습니다. 가시면서 미술계에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됐으면 하는 생각을 평소 자주 말씀하셨고, 그래서 형제들과 뜻을 모아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17일 국립현대미술관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언론공개회에서 ‘동산방화랑’의 박우홍 대표가 전한 말이다.

 

1961년 표구사로 시작해, 1974년 한국화 전문 화랑으로 문을 연 동산방화랑은 신진작가 발굴과 실험적인 전시 기획을 바탕으로 현대 한국화단의 기틀을 마련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내년 2월 12일까지 만날 수 있는 이번 특별전은 동산방화랑 설립자 고(故) 동산 박주환 대표가 수집하고 그의 아들 박우홍이 기증한 ‘동산 박주환 컬렉션’ 작품 209점 중 9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 ‘동녘에서 거닐다’의 ‘동녘’은 박주환의 호인 ‘동산(東山)’을 의미하는 동시에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상징한다. 근대 이래 한국화가들이 그려온 삶의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 주제를 담았다.

 

지난 2021~2022년 2회에 걸쳐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동산 박주환 컬렉션’은 한국화 154점을 포함한 회화 198점, 조각, 6점, 판화 4점, 서예 1점 등 총 209점이다. 이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화 소장품 수는 1542점으로 늘어 한국화 연구의 기반이 마련됐다.

 

박종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직무대리는 “이번 특별전이 국내 수집가들의 기증 문화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면서 “기증자들의 숭고한 뜻을 국민들에게도 알릴 수 있도록 이번과 같은 전시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해강(海岡) 김규진(1868~1933)부터 유근택(1965~)까지 작가 57인의 작품을 통해 한국화의 시대적 흐름을 따라간다. ▲신구화도: 옛 그림을 연구하여 새 그림을 그리다 ▲한국 그림의 실경 ▲전통적 소재와 새로운 표현 ▲중도의 세계: 오늘의 표정 ▲에필로그: 생활과 그림 등 총 5부로 구성됐다.

 

1부는 ‘서화협회전’(1921-1936)과 ‘조선미술전람회’(1922-1944) 등 ‘전시’ 형식의 등장 및 서구 회화의 조형 원리에 대한 영향 속에서 화가들이 자신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김규진의 ‘풍죽’이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두 그루의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이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으로, 대와 잎을 강조했다. 담묵과 농묵을 활용한 조화로운 화면 구성이 돋보인다.

 

의재(毅齋) 허백련의 ‘월매’는 10폭 연폭 병풍으로, 좌측에는 대나무가 무리지어 있고, 우측에는 매화 가지가 여백을 향해 뻗어있다. 폭마다 다른 주제와 그림이 담긴 것이 아닌, 10폭 자체가 하나의 화포가 된다.

 

청전(靑田) 이상범의 ‘초동’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의미 있는 작품 중 하나다. 그의 사경산수화 양식과 기법이 확립되던 초기 작품 경향을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1977년 동산 박주환이 재정난을 겪던 국립현대미술관을 위해 기증했다.

 

 

2부에서는 1945년 광복을 맞이한 후부터 한국전쟁을 거지는 격동의 시대 속 전통 화단의 계보를 잇고자 했던 작가들을 조명한다.

 

석운(石雲) 정은영은 부친인 정진철의 영향으로 나비를 소재로 삼은 여러 작품을 제작했다. ‘모란과 나비’는 섬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나비 한 마리를 그릴 때도 5~6시간 걸렸다는 작가의 말을 실감케 한다.

 

‘송하인물’은 소나무 아래 바위에 기대어 달을 감상하는 인물을 그렸다. 이 작품에는 세 개의 낙관이 찍혀있는데, 청계(靑谿) 정종여, 운보(雲甫) 김기창, 청전(靑田) 이상범의 것이다. 합작은 근대기 서화가들의 창작 방식 중 하나로 정종여는 소나무, 김기창은 인물, 이상범은 화제를 써 작품을 완성했다.

 

 

3부는 1960년대 이후 현대 한국화의 방향성을 모색했던 작가들을 소개한다. 이 시기 동산방화랑은 원로작가 중심이던 화단계에서 청년·신진작가 발굴에 주목한다.

 

산정(山丁) 서세옥의 ‘도약’은 잉어가 물 위로 힘차게 도약하는 모습을 담은 약리도·어변성룡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수묵담채화이다. 간소하게 표현된 물결 등을 통해 전형적인 그림 양식에서 탈피한 새로운 작가적 해석이 드러난 작품이다.

 

송수남 작가는 1980년대 수묵화 운동을 이끌었던 중심 인물이다. 그는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지속적으로 ‘자연과 도시’ 연작을 작업했으며, 동산방화랑에서 개최한 개인전(1988)에서는 해당 연작 100여 점을 출품하기도 했다.

 

4부에서는 전통 수묵화인 지·필·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작업 세계를 펼친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혼합된 장르와 매체들이 등장하며, 한국화의 정체성을 다양하게 해석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유근택의 ‘산책’은 어른과 아이가 함께 숲속을 거닐고 있는 모습을 묘사했다. 작가 개인의 일상을 주제로 표현한 작품으로, 현대에 들어서며 작가 개별의 내면적 세계를 끌어내는 작품들이 많이 등장했음을 보여 준다.

 

 

에필로그에서는 산수화, 축수화 등 그림을 활용해 주변인들과 소통해왔던 한국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김기창의 ‘화조’, 홍석창의 ‘홍매’ 등을 감상할 수 있다.

 

한편, 전시실을 나서면 만나는 회랑 공간에서는 동산방 표구로 시작해 오늘날까지 이어진 동산방화랑의 발자취를 볼 수 있다. 아카이브와 인터뷰 영상 등 총 120여 점을 전시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기자 ]

정경아 기자 kyunga101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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