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왕자가 인어공주를 사랑한 이유

2023.06.12 09:17:19 16면

116. 인어공주 - 롭 마샬

 

안타깝게도 국내외 모두에서 흥행에 실패한 실사영화 ‘인어공주’는 몇 가지 지점에서 다른 면을 지니고 있다. 그것도 두드러질 만큼 아주 다른데 짐작하는 것과는 달리 인어공주가 흑인이라는 점이 제1의 요소는 아니다. ‘공주=흑인’은 차이라기 보다 비교적 단순한 특징, 캐릭터의 외모 설정에 불과하다. 인어공주가 흑인이기 때문에 내용이 달라지거나 극 전체의 톤 앤 매너가 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냥 피부가 까매서 처음엔 다소 ‘신기하게’ 느껴지다가도 이내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란 걸 알게 된다.

 

이번 ‘인어공주’가 안데르센의 원작이나 1989년에 나온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와는 궁극의 지점에서 각각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1) 원작과는 결말을 완전히 다르게 갔다는 것이고 2) 1989년 애니메이션과는 왕자의 캐릭터가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실사영화에서 왕자는 ‘백마를 탄’ 이미지가 아니다. 그는 다른 선원들과 함께 갑판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백성처럼, 일반 국민처럼 살아가려는, 그래서 ‘보통 사람의 정치학’을 깨달아 가려는 꽤 괜찮은 덕목의 지도자 청년으로 나온다. 심지어 왕자는 그리 잘생기지도 않았다. 외모상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의도적으로 평범한 인물로 그리려 애쓴다.

 

 

덴마크 작가 안데르센의 원작은 비극이었다. 이번 실사 영화는 해피 엔딩이다. 인어공주는 원작처럼 물거품이 돼 사라지지 않는다. 원작에서 왕자는 다른 여자(우아한 옆 나라 공주)를 선택해서 인어를 배신하지만 이번 실사에서는 다시 인어공주인 에리엘(할리 베일리)에게 돌아간다. 왜냐하면 다른 여자가 곧 흉측한 문어 마녀 울슐라(멜리사 매카시)인 것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이건 꽤나 진부한 선택인데다 안데르센이 지닌 잔혹하고 우울한 취향을 ‘배반한’ 것이어서 작품을 완전히 다른 지점에 갖다 놓은 최고의 동력이 된다.

 

감독 롭 마샬(뮤지컬 전문 감독으로 ‘시카고’와 ‘나인’, ‘메리 포핀스 리턴즈’를 만들어 성공했다. 최고의 작품은 ‘숲속으로’이다. 극영화로는 ‘게이샤의 추억’이 성공했다.)이, 안데르센은 안데르센이고 자신은 자신으로서 자신만의 인어공주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면 원작과 다른 결말이야말로 그걸 성공하게 한 요인이 된다. 하지만 이런 결말은 이미 1989년의 애니메이션에서 일정 부분 차용해 온 것이어서 그다지 신선한 것은 아니다. 디즈니는 세계 청소년 관객들을 위해 잔혹한 비극의 결말을 ‘결단코’ 피해 가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 점에서 이번 실사 판 ‘인어공주’는 디즈니의 제작 철학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실사영화에서 롭 마샬이 강조점을 두려 했던 것은 인종 문제, 미국 내 인종차별의식에 대한 비판의식을 고양시키려 하는 것 ‘따위’는 아니었을 것이다. ‘흑인 인어공주’는 디즈니의 얄팍한 상술이자 세계 시장을 겨냥한, 일종의 맥거핀(진짜 이야기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있어 그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앞서 전개시키는 가짜 이야기. 트릭.)이다. 디즈니는 의도적으로 논란을 만들어 냄으로써 최대치의 마케팅 효과를 노린 셈이다.

 

할리우드는 청년 세대들을 겨냥해 혁명마저 상품으로 내다 파는 진짜 장사꾼들이다. 2011년 뉴욕 증권가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청년들의 격렬했던 시위 ‘오큐파이 월스트리트(Occupy Wall Street)를 점령하라’ 이후에 나온 영화가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헝거 게임’시리즈였다. 할리우드는 좌파나 우파나 가리지 않는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스스로 게릴라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흑인 인어공주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이번 실사판 ‘인어공주’의 주제는 왕자의 대사에서 나온다. 왕자 에릭(조너 하우어 킹)은 뱃머리에서 저 멀리를 바라보며 신하 그림스비 경(아트 말릭)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저 외부로 나아가야 합니다. 외부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 (섬) 왕국이 살아갈 수 있는 길입니다.” 에릭의 왕국은 여왕(노마 두메즈웨니)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데 여왕은 현재 바다의 신 트리톤(하비에르 바르뎀)과 대립해 싸우고 있다. 트리톤은 여왕의 나라에 의해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를 잃었다. 그는 현재 7대양의 바다에 인어공주 딸 7명을 키우고 있으며 그중 막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인어공주’의 원제는 the little mermaid, 곧 ‘막내 인어’이다.)  

 

영화 ‘인어공주’의 설정, 곧 섬 왕국을 둘러싼 국제정세(?)는 미중 G2의 갈등을 의미하며 에릭은 (트럼프처럼) 장벽을 쌓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일국 자본주의나 자국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공생과 연대의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개방만이, 오픈 마인드만이 살 길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그런 에릭에게 적국의 막내 공주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매우 정치적인 승부수에 해당하는 일이다. 영화는 결국 둘이 결실을 맺게 한다. 그건 세계 평화를 이루어 내거나 이루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자는 얘기와 동음이의어이다.

 

우크라이나 젤렌스키의 아들이 러시아 푸틴의 딸을 사랑한다면 두 나라는 전쟁을 멈출 수도 있겠다. 실로 동화 같은 상상이지만 그럼에도 흐뭇해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인어공주’의 진짜 주인공은 인어가 아니라 왕자이며 적어도 각각이 아니라 이 남녀 커플 두 명 모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탈(脫) 인종주의가 아니라 탈 패권주의에 의한 세계 평화와 공존이라는 것이 ‘인어공주’의 핵심 메시지이다.

 

 

롭 마샬은 뮤지컬의 대가이고 노래와 춤의 연출에 있어서 전문가 중 최상위 급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당연히 ‘인어공주’의 백미는 주인공 에리얼의 노래이다. 할리 베일리의 노래는 이 영화를 두고 벌어진 이런저런 논란과 논쟁을 잠재울 만큼 최고 수준이다. 영화는 별로지만 베일리 노래 하나는 끝내줘, 라는 식이다. 또는 영화도 괜찮은데 정말 노래가 대단해, 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그만큼 할리 베일리의 음성과 노래 실력은 신의 영역이다. 베일리가 워낙 압도적이라 다른 배우들의 안무와 노래는 빛이 나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아예 비중을 줄이는 것이 낫다고 롭 마샬은 판단했고 그 대신 만화 캐릭터인 갈매기 스커틀(아콰피나)과 게 세바스찬(데이비드 디그스), 물고기 플라운더(제이콥 트렘블레이)가 바다속 생물들과 합창을 하는 노래 ‘언더 더 씨’에 각을 줬다. 이 영화의 하일라이트에 해당한다. 굉장히 행복하고 유쾌해 보이는 척, 노래 가사는 참혹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언더 더 씨’는 영화 ‘인어공주’의 모든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에리얼 내 말 좀 들어 봐 / 인간 세상은 엉망이야. / 바다 밑의 삶이 그 어떤 것보다 낫다구.. /.. 너는 육지로 올라가는 걸 꿈꾸지만 그건 큰 실수야…/…. 저 바다 밑 저 바다 밑…/…저 물가에서는 하루 종일 일하지 / 태양 아래의 노예처럼….』

 

 

오동진 krh083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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