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비닐하우스 여자가 겪는 참혹한 비극에 대하여

2023.07.24 14:30:58 16면

122. 비닐하우스- 이솔희

 

영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라 비닐하우스에서 살아가는 한 여자의 어둡고 참혹한 이야기다.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은데 생각해 보면 정말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안다.

 

한 마디로 영화가 지닌 ‘비현실적 현실성’의 속성을 보여 준다. 그냥 영화에 불과한 얘기 같지만 알고 보면 이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거나 최소한 그 같은 현실의 일을 반영하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현실성=리얼리티’가 배가된다. 이런 느낌의 반대가 ‘현실적 비현실성’인데 영화가 너무 현실 같아서 마치 다큐를 보듯 실제 같은 느낌을 받지만 그래도 결국 꾸며진 이야기라는 것이다.

 

많은 판타지 영화들, SF 영화들이 그렇다. 결국 영화에 불과하다는 소격효과(疏隔效果 : 연극이나 영화를 보면서 중간중간 작품을 객관화, 대상화해서 보게 되는 과정)로 관객들은 더 큰 안심을 느끼게 된다.

 

지구가 재앙으로 멸망하는 과정 같은 것을 영화로 본 후의 느낌 같은 것이다. 이 역시 영화가 주는 리얼한 느낌을 역설적으로 증폭시키는 효과가 된다. 사람들은 언젠가 우리들의 운명이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영화 ‘비닐하우스’는 그냥 영화인 척 사실은 영화가 아니라 실제 현실을 그린 내용으로 보여 그 끔찍함이 더해진다. 주인공 문정(김서형)은 비닐하우스에서 산다. 아들은 소년원에 있다. 문정이 생계를 이뤄 나가는 방법은 치매 할머니를 돌보는 간병 보호인 일을 하는 것이다.

 

그 집에는 시력을 잃은 할머니의 남편도 있다. 문정이 돌보는 치매 할머니는 폭력 증상이 심하다. 그녀는 툭하면 문정에게 ‘이 년이 나를 죽이려 한다’며 발악한다. 물건을 던지고 침을 뱉고 머리를 잡아당기기 일쑤다.

 

문정 그녀도 약간의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데 한 사회단체에서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 집단 상담 치료에 다니는 중이다. 문정은 거기서 ‘얼마 전까지는 병원에 다녔었는데 돈이 없어서 여기로 왔다’며 창피해 한다.

 

같이 상담을 받는 사람 중에는 순남(안소요)같은 여자가 있다. 그녀는 매일같이 ‘선생’이란 남자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며 살아 간다. 이 ‘선생’이란 작자는 사회복지사이고 그 인간은 종종 문정에게도 욕정을 푸는 ‘쓰레기’이다.

 

 

남자는 문정에게 ‘누나가 보고 싶었어, 누나하고 같이 살까?’ 등등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다. 일종의 우회 폭력이고 잠재 폭력이다. 하지만 결국 강간이다. 문정은 과거에도 언뜻 실제 폭력 남편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이며 그건 그녀의 아들이 소년원 면회 때 한 말 때문에 짐작되는 일이다.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나랑 사는 게 괜찮겠어? 아빠가 떠올라서. 내가 똑같이 생겼다며?” 문정의 삶은 고단함의 최고치이다. 그녀는 아이가 소년원에서 나오면 같이 살 집을 얻기 위해, 그 돈을 벌기 위해 현재 ‘무지하게’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그녀의 유일한 목표는 아이와 같은 집에서 사는 것인데 그 진정한 목적은 분명 아들이지만 이 모든 게 다 ‘그놈의’ 비닐하우스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 된다. 보다 정확하게는 ‘비닐하우스 같은 궁박(窮迫)한 현실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 된다’라는 얘기다.

 

 

총 러닝타임 100분의 길이에서 영화는 40분이 넘어가며 롤러코스터를 탄다. 문정과 치매 할머니는 욕실에서 언제나 그렇듯 옥신각신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치매 노인은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그래서 그렇게 된 건 아니고 정말 어쩌다 그렇게 되는 것이지만 문정은 노인의 시체를 유기하고 집에는 자신의 진짜 치매 노모를 데려다 놓는다. 마침 집에 같이 사는 노인 남자는 실명을 한데다 그도 초기 치매 판정을 받기까지 한 상태다.

 

어쩌다 보니 모든 게 딱딱 들어맞게 됐다. 그러나 그게 영 불안하다. 간신히 사체를 자신이 사는 비닐하우스에 갖다 놓았지만 그 장면은 순남에게 들킨 상태다. 문정은 순남을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내심 자기 편으로 만들 요량으로 그녀를 강간하고 있는 사회복지사를 죽여 버리라고 말한다.

 

간호 보조를 하는 집에서는 노인 남자가 점점 이상한 낌새를 차리는데 옆에 있는 여자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욕실에서 잘 연습해서 목을 맬 계획을 세운 상태이며 그 ‘거사’ 전에 치매인 아내를 자기 손으로 죽일 생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의 아내인지 아닌지가 매우 중요하다.

 

 

영화 ‘비닐하우스’는 그냥 일반적인 드라마인 척 사실은 꽤 밀도 높은 서스펜스 스릴러로서의 이런저런 특질을 극 중반 이후 죽 풀어 놓으며 이걸 만든 신인감독 이솔희 감독이 스스로 장르적 장기가 만만치 않음을 과시한다.

 

미스터리와 달리 서스펜스란, 모든 얘기의 비밀,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사실들을 관객이 다 알고 있는 경우의 얘기를 말한다. 다만 극 중 인물들만 모를 뿐이다.

 

예컨대 관객들은 1) 맹인 남자가 집에 있는 치매 노인이 자신의 아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의심하는 것을 보게 된다.  2) 이 남자는 자신의 친구이자 의사를 집으로 부른다. 3) 남자 둘이 관련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사실은 문정의 실제 엄마로 대체된 치매 노인은 소파에서 등을 돌려 자고 있는 중이다.

 

4) 친구 의사가 막 할머니의 등을 돌려 얼굴을 확인하려 한다. 5) 그러나 정작 문정은 좀 전까지 이런 사실, 곧 맹인 노인의 친구가 집에 올 거라는 사실을 모른 채 새로 이사 갈 임대 아파트를 쓸고 닦고 하던 중이다. 6) 친구 의사가 할머니의 몸을 돌리려는 순간 문정이 집안으로 들어선다. 7) 문정은 화들짝 놀라며 그를 제지하고 위기의 순간을 모면한다.

 

이 시퀀스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긴장감이 만만치 않다. 관객들은 극장 안에서 속으로 이구동성, 문정에게 소리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빨리 집으로 가야 해! 위험해!’ 이렇듯 ‘비닐하우스’는 서스펜스 드라마의 정통 기법이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작품이다.

 

 

참고로 미스터리는 서스펜스와 달리 극중 인물이나 관객들이나 수수께끼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경우의 이야기를 말한다. 살인사건 수사 드라마의 상당수가 여기에 해당하는데 인물이나 관객이나 모두 맨 나중에 가서야 사건의 전모나 진범의 실체를 알게 된다. ‘비닐하우스’는 미스터리 드라마가 아니라 서스펜스 드라마이다.

 

문정의 행동을 두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 대거나 법적인 판단을 하려 하는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어리석은 세상의 행태일 터이다. 감독 이솔희의 목소리는 적어도 그 점을 뛰어넘고 있다. 영화는 도덕이 아니다. 종종 도덕과 윤리 이상을 지향한다.

 

문정의, 의도치 않았던, 범죄 행각은 과연 성공하게 될까? 성공하는 것은 과연 옳을까. 아니면 반대로 모든 것이 밝혀지는 것이 옳을까. 분명한 것은,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이걸 보는 관객들은 문정을 둘러싼 ‘많은 일들’이 아직은 잘 숨겨졌으면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차라리 판단이 유예됐으면 하는 것이다. 그녀가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앞이 안 보이는 노인은 중간에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아들과 손주에게 유언을 녹화, 녹음한다. 그는 말한다. “애들아. 삶을 만들어 나가는 건 언제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단다.” 세상의 삶은 단순 명쾌하게 한 칼에 정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공정과 정의 역시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는 옳은 것을 선택하기 보다 인간적인 것을 선택해야 한다. 영화 ‘비닐하우스’가 궁극으로 얘기하고 있는 주제이다.    

 

김서형의 연기가 놀랍다. 그녀는 시종일관 자신의 뺨과 얼굴을 후려치며 자학을 한다. 관객들도 자신의 뺨을 후려치고 싶게 만든다. 모두들 그러고 싶은 시대이다.

오동진 krh083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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