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류승완답지만 가장 류승완스럽지 않은 영화?

2023.07.31 13:21:08 16면

123. 밀수-류승완

 

한국 영화계의 ‘가장 영리한 아저씨’ 류승완 감독의 신작 ‘밀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주저 없이 선택하게 할 작품이지만 어떤 사람들, 특히 류승완을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소 실망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매우 대중적이고 상업영화답지만(티켓값이 전혀 아깝지 않지만) 류승완의 작가적 성향은 다소 숨이 죽은 느낌의 작품이다. 근데 그건 감독 스스로 다소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면이 있다. 류승완도 때론 쉬어가고 싶은 심정일 테고 영화를 즐기면서 찍고 싶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밀수’는 최동훈이 만든 ‘도둑들’의 페미니즘 판 작품이다.  페미니즘 케이퍼 무비(Caper Movie) 혹은 여성들의 랫 팩(Rat Pack) 무비인 셈이다. 한 무리의 강도들이 범죄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전 과정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라는 얘기인데 그 주인공들이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지금껏 이런 유의 ‘강탈 영화’는 대체적으로 남자들이 주인공이었다.

 

가깝게는 ‘오션스 11’이니 ‘뱅크 잡’이니 하는 것들, 멀게는 숀 코네리 주연의 1979년작 ‘대 열차 강도’같은 것, 더 멀게는 프랭크 시나트라와 딘 마틴이 주연을 맡았던 작품으로 ‘오션스 11’이 리메이크했던 1960년작 원판의 동명 영화 같은 것, 그리고 아까 얘기한 한국의 ‘도둑들’같은 영화이다.

 

 

모두 다 리더 격 남자가 음모를 짜고,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대범하면서도 교묘하게 사람들을 속인 후(몇 겹의 속임수 장치를 써서) 유유히 돈을 챙겨 떠나가는 얘기들이다. 여자들은 거개가 미인계를 쓰거나 리더 남자와 러브 라인이 있는 ‘대상’으로 등장하기 일쑤다.

 

그런데 ‘밀수’는 그걸 완전히 뒤집고 있다. 그 점 하나만큼은 실로 류승완답다. 그런 점에서 새롭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흥행 면에서는 이 영화의 최대 약점이 될 수 있다. 소위 ‘이대남’들, 20대 남자들이 여성문제에 관한 한 다소 ‘비뚤어진’ 태도를 지닌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1974년쯤부터이고, 확실한 것은 얘기의 끝이 1979년이라는 것이다. 이건 영화 속 내내 흐르는 사운드트랙이자 70년대 노래로 컴필레이션을 한, 기발한 영화음악 구성(장기하)으로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이다.

 

영화의 앞뒤로 1974년 노래 김추자의 ‘무인도’가 흐르고 대체로 1977~1979년에 발표된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최헌의 ‘앵두’,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디일지 몰라도’가 주요 곡으로 사용된다. 음악으로 영화 속 이야기의 시간을 짐작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영리하게 짰다. 그 영리함이야말로 류승완 답다.

 

 

가상의 섬 군천에서 밀수로 살아가는 어부들, 해녀들의 얘기다. 가상의 도시를 기점으로 하는 류승완 스타일은 2006년작 ‘짝패’에서 한번 쓰인 것이다. 그 영화에선 충남 온양(지금의 아산)을 온성으로 바꿨다.

 

이번의 군천이라는 지명은 아마도 군산을 염두에 뒀지만(알려진 바로는 류승완은 이 영화의 모티프를 군산에 있는 호남관세박물관에 갔다가 얻은 것이라고 한다.) 이런 일은 다 꾸며낸 얘기라는 듯, 배경은 부산으로 바꾸되 거기서 맞닥뜨리는 섬은 실제론 남동해 바다에서는 볼 수 없고 오히려 목포나 여수, 해남의 바다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치장시키는 등등 공간을 마구 뒤섞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역설적으로 소격 효과(疏隔 效果)가 일어난다. 이건 영화일 뿐이라는 것인 바, 그러니 너무 심각하거나 진지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한번 즐기라, 주인공들 마냥 한 판 놀자고 권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군천의 해녀들은 먹고살기 위해 밀수에 나선다. 외항 어선들이 특정 지점에 물건을 던져 놓으면 물질이 장기인 그녀들이 바다로 들어가 그걸 건져 오는 수법이다. 위험하지만 아주 확실한 방법이어서 해녀들은 짭짤한 재미를 보게 되는데 그 중심인물이 진숙(염정아)이다.

 

그녀의 아버지가 ‘맹룡’호의 선장(최종원)이고 남동생이 같이 작업을 한다. 진숙은 밀수 일을 같이 하는 해녀들 중 춘자(김혜수)와 가장 친하다. 이들이 물질을 해서 건져 바다 위로 띄우는 밀수품들은 동네 건달 장도리(박정민)와 똘마니들이 배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한다.

 

이들은 척척 손발이 맞는다. 그러던 어느 날 일감을 물어다 부는 삼촌(김원해)으로부터 다이아와 금괴를 들여오면 떼돈을 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선장 아버지는 일이 너무 크다며 처음엔 반대하지만 진숙과 춘자는 그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평소대로 작은 밀수 일을 시도하지만 알고 보니 그게 금괴였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곧 출동한 세관 경찰들에게 발각되고 그 과정에서 진숙은 아버지와 동생을 잃는다. 자신도 3년간 감방에 가느라 아버지의 맹룡 호까지 뺏기게 된다.

 

 

판은 커진다. 춘자는 대도시에서 전국구 밀수 왕 권상사(조인성)를 끌어들이고 이제 군천은 예전에 하수인에 불과했던 장도리가 접수한 상태다. 세관 계장 김 계장(김종수)의 악랄한 추적은 그 강도가 더 높아졌다.

 

아버지와 동생을 잃을 당시 그때의 ‘건수’를 누군가가 ‘찔렀다’고 해녀들은 생각하고 그게 바로 춘자라고 입을 모은다. 춘자만 도망쳤기 때문이다. 진숙은 춘자를 원수로 생각하지만 결국 먹고살기 위해 그녀와 힘을 합친다. 이제 권상사를 속이고 장도리를 따돌려야 하며 무엇보다 김 계장의 눈을 피해야 한다. 3각 4각의 사기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영화 ‘밀수’의 핵심은 머리가 아니고 몸이다. 속고 속이는 두뇌싸움보다는 류승완 식 액션의 화려한 진열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볼거리이다. 그중 하나가 미루어 짐작하겠지만 수중 액션 장면들이다. 해녀들이 물속을 오가는 만큼, 그 안에서의 추격전과 살인극이 이어진다.

 

심지어 상어의 습격도 있다. 입수 장면, 바다에서 나오는 장면, 헤엄치는 장면 등은 실제 바다에서 찍고, 수중 장면은 파주 탄현면에 있는 전문 수조 세트에서 찍었을 것이다. 실제 배우와 스턴트 배우의 액션을 엮고 이어 붙이고 상어를 비롯해 해초, 바위 등 일부는 CG로 처리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찍고 편집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자체를 상상해 내고 디자인 해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한국 영화의 테크놀로지는 ‘밀수’로 또 한 번 진일보하고 진화하게 됐다. 역시 류승완답다.

 

 

중간중간 인물들 간 피 튀기는 액션 신이 원 신 원 컷의 롱 테이크로 찍힌 것도 이 영화가 지닌 아삼삼한 재미 가운데 하나이다.

 

박정민이 맡은 장도리가 자신들을 급습한 경찰을 막으며 고군분투, 망치와 쇠 파이프를 휘두르며 사무실을 한 바퀴 도는 장면은 이 감독이 얼마나 액션을 잘 찍으며 그걸 넘어서서 얼마나 본인 스스로 액션 연기나 촬영, 그 디자인에 자신감이 있는지를 한 치의 유감없이 발휘한다.

 

권상사와 그의 부하 애꾸(정종원)가 호텔에서 벌이는 ‘칼부림’은 거의 무협이나 권법 영화의 활극을 연상시킬 만큼 화려하기가 이를 데 없다. 역시 액션은 류승완이다. 류승완답다.

 

올여름의 무더위는 유난히 폭력적이다. 영화를 보며 푹 쉬고 싶으신가. 류승완이 노린 건 바로 그 점일 것이다. 가뜩이나 짜증 나는 세상이다. 영화가 사람들을 쉬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전작 ‘모가디슈’나 ‘베를린’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이번 ‘밀수’는 생각이나 고민보다, 즐기게 하는 게 우선인 영화다. 그 배려심이 고맙다. 역시 류승완답다.

오동진 krh083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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