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의 창] ‘어느 탈북자의 죽음과 탈북자 정책’

2023.09.11 06:00:00 13면

 

2023년의 8월, 새벽부터 세차게 내리는 비 소리가 잠을 깨워 곤히 자고 있는 마누라를 뒤로 하고 거실로 향했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보고는 멍해졌다. ’이00 본인상‘이란 알림장이 카톡으로 날아와 있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동명이인으로 착각했지만, 이내 고위급 탈북자였던 이00임을 알았다. 어!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1년 전에 만나고 매월 초면 이모티콘으로 나마 안부를 주고받았기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생각으로 살았다. ”한 번 연락해야지“ 하는 찰나에 부고장이 마지막 소식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고인과 필자 간에 ‘마음의 접촉지대’가 만들어진 계기는 모대학원 박사과정이었다. 군 출신답게 직선적이고 소탈한 편이어서 북한 현안에 관해 물어보면 성실하게 대답해준다. 실감 있게 북한 상황과 특질을 이해하게 해준 사람이다. 그러기에 경제적으로 도움 주지 못하더라도 정신적으로 나마 남한 생활 중 겪는 고민의 일단이라도 해결해주려 노력했다. 부산지역에 특강 같은 것을 가는 것을 좋아했다. 재북 시절, 인민군이 부산까지 완전히 점령하지 못한 이유가 몹시 궁금했었단다. ”어떻게 생긴 도시인데 우리 인민군이 점령하지 못 했을까?“는 재북시절 풀지 못한 화두였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고인은 노스탤지어 즉 향수병을 SNS를 통해 달랬다. 세상과 이별하기 몇 년 전부터 재북 가족 소식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며 향수병을 달랬다. 국가보위성에 있는 친우들이 재북 가족을 이용하는 것을 눈치 채면서도 노스탤지아는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들을 노동당 입당에 이어 인민군 장교로 임명해주고 ”너 아들은 박해받지 않고 공화국에서 대접 잘 받고 있으니 우리 말 만 잘 들으면 된다“는 식의 반협박성 반회유성 공작이었음에도, 천륜 앞에서는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이 교수 보세요. 내 손자 정말 잘생기고 늠름하지요!“. 그리고는 평양으로 돌아가고픈 마음도 달빛처럼 내비쳤지만, 1년간의 혹독한 혁명화교육과 이를 마치고 나와도 적절한 역할을 맡기가 어렵다는 것 때문에 평양행을 포기한다고 했다.

 

그는 마음으론 분단을 넘나든 이중적 딜레마 속에 살면서, 끊임없이 장벽 뛰어넘기를 시도한 사람이었다. 북한 보위성은 고인을 유효적절하게 써먹었다. 문재인 정부시절이었음에도 공식적인 남북교류가 막히자 남한에 있는 탈북자를 이용했다. 이들에게 참기름 등 생필품 등 몇 천 만 원 어치를 보내라고 요구하면 중국에 있는 지인을 중간 매개자로 하여 단둥까지 보내곤 했다는 얘기를 전공처럼 들려주곤 했다. 고인의 삶은 한반도에서 경계인이 살아가는 모습의 한 단면이다. 원초적 욕망인 노스탤지어와 가족이란 끈에 매달려 자기 인생을 소비하고 느닷없이 저 세상으로 갔다.

 

몇 달 전 통일부장관이 바뀌면서 통일부가 혁명적으로 쇄신하고 있다. 탈북자 즉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정책도 새롭게 정립될 것으로 기대한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정권교체를 열망했던 것도 문재인 정부의 탈북자에 대한 소홀한 대우가 주 요인이다. 목숨을 걸고 남한에 들어왔는데 기본적인 지원만 하고 ”너희들이 알아서 살라“고 사실상 방임한 것에 대한 탈북자들의 분노가 많았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지 못하면, 그토록 혐오한 북한을 다시 그리워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한다. 새롭게 탈바꿈한 통일부는 그 무엇보다 탈북자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기본으로 하는 ‘윤정부의 탈북자정책’ 청사진을 하루속히 내놓아 탈북자들이 북한 보위성 등에 이용당하지 않고 자유대한민국 국민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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