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인구소멸…‘풍요’의 저주?

2024.01.05 06:00:00 13면

 

북한산 등산길에서 자주 보던 소나무가 있었어요. 바위들 틈에서 자란 그 나무는 수령은 꽤 된 듯 여겨졌지만 척박한 환경 탓인지 키가 2미터도 채 못 되었지요. 어느 해인가 그 소나무를 무심히 살피다가 아래쪽에 달린 엄청나게 많은 솔방울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그 전과도 달랐고, 근처 다른 소나무하고도 전혀 달랐거든요. 나무의 영양 상태가 꽤 나쁜 편이었어요. 


어느 해인가 지인의 농장에서 이상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고추밭을 돌아보다가 지인이 말했어요. “이 고추들 좀 봐. 내가 요즘 바빠서 물 주기를 소홀했더니 아래쪽으로 수두룩하게 고추를 달았어. 하찮은 생물도 종족 보존의 본능은 강한가 봐. 척박해지니까 새끼들을 이렇게 많이 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생률이 0.72명으로 떨어지면서 세계적 관심거리가 됐죠.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서트(Ross Douthat)는 얼마 전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국의 급격한 출산율 저하를 놓고 “중세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했을 당시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어요. 이대로라면 ‘지방소멸’은 불 보듯 뻔하고, ‘국가소멸’까지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지구촌의 인구는 매초 4.3명이 출생하고 2명이 사망하면서 80억 명을 넘겼다지요.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는 나라들은 대략 저개발국가로군요. 콩고민주공화국·이집트·에티오피아·인도·나이지리아·파키스탄·필리핀·탄자니아 등이네요. 인류도 대자연의 일부여서 그 대원칙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요.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요? 놀랍게도 이민자 유입이 미국 인구의 소멸을 막고 있다네요. 미 통계청 예측으로는, 2024년 새해 미국에서는 9초마다 한 명이 태어나고 9.5초마다 한 명이 사망하지만, 이민자 유입으로 28.3초마다 1명꼴로 오히려 증가한다는군요. 


우리 법무부가 출입국·이민관리청(가칭)을 신설하고, 불법체류 외국인 수를 대폭 줄이는 내용을 담은 ‘제4차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을 확정했다네요. 인구소멸 문제는 이제 발등에 떨어진 불이에요. 많이 낳거나 많이 데려오는 수밖에 없죠. 


인구절벽으로 인한 국가소멸 위기는 영락없는 ‘풍요의 저주’예요. 일부러 ‘빈곤’으로 가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네요. 북한산 등산길 옆 솔방울을 한가득 매달았던 소나무는 결국 톱질을 당해 그루터기만 초라하게 남아있어요. 누군가 농담처럼 ‘일부다처제’를 해법으로 얘기했다가 낭패를 당했다는 웃지 못할 소문도 있네요. 시원한 해결책 어디 없을까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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