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했던 삶을 이겨낸 여성들의 이야기 …뮤지컬 ‘여기, 피화당’

2024.02.20 10:26:45 10면

17세기 조선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작자 미상 ‘박씨전’ 작가 상상하며 만든 뮤지컬
전쟁으로 핍박 받는 여성과 약자 보듬고 오늘날에도 연대와 희망 메시지 전해
4월 14일까지 서울 대학로 플러스씨어터

 

17세기 조선, 병자호란 직후 창작된 ‘박씨전’을 모티프로 한 창작 초연 뮤지컬 ‘여기, 피화당’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박씨전’의 작가는 누구일까?‘라는 상상에서 시작한 뮤지컬은 병자호란에서 큰 공을 세운 ’박씨‘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여성영웅 서사를 다루고 있다.

 

고전 소설 속 ‘박씨’는 이시백과 혼인하지만 자신의 흉측한 외모로 구박을 받자 뒤뜰에 ‘화를 피하는 곳’이라는 ‘피화당’을 짓고 홀로 살아간다. 3년 뒤 흉측한 허물을 벗을 때가 됐다는 아버지의 말에 ‘박씨’는 미인으로 변하고, 외모에만 마음을 쏟은 이시백을 크게 꾸짖는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피화당’에 쳐들어온 청나라 장수 용율대를 죽이고 그의 형 용골대를 무릎 꿇리며 청나라에 당한 조선 민심을 달랜다. 남한산성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의식을 한 인조는 ‘박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박씨’를 충렬 부인에 봉하고 상을 내렸다.

 

 

뮤지컬 ‘여기, 피화당’은 이런 박씨전의 내용을 극중극 형식으로 관객에게 전하며 병자호란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실상을 보여준다. 실제 병자호란으로 많은 조선의 여인들은 청으로 끌려가게 됐고, 정절을 잃었다며 가족들에게 버림받는다.

 

뮤지컬의 주인공 ‘가은비’, ‘매화’, ‘계화’ 역시 집에서 쫓겨나 ‘피화당’이라고 이름 지은 동굴에서 남몰래 글을 지으며 생계를 유지한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고자 벽보를 쓰는 선비 ‘후량’은 이들을 찾아가 글을 의뢰하며 이들을 돕는다.

 

‘박씨전’을 쓰는 ‘가은비’, ‘매화’, ‘계화’는 ‘박씨전’의 주인공 ‘박씨’처럼 주체적이고 당찬 인물이다. 가족에게 버림받았지만 자신이 쓰는 글이 누군가의 위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사랑을 잃지 않는다. 용기를 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15일 서울 대학로 씨어터플러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한솔 작가는 “병자호란 이후 청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성들이 이혼과 자결을 요구받는 사실에 어쩌면 이 박씨전의 작가가 이들 중 한명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종이에서 만큼은 그 울분을 표출하고 청에게 복수하고 자신을 저버린 무능한 사대부들을 비판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고 창작 배경을 밝혔다.

 

이어 “지금 이 시대에도 세 여인들이 겪었던 일들은 반복돼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 이야기로 세 여인을 비롯한 모든 여인들이 극장에 와서 화를 피하길, 이 안에서만큼은 희망을 갖기 바란다”고 말했다.

 

음악은 17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국악을 기본으로 캐릭터의 정서나 감정, 전체적인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배우들은 탈을 쓰고 ‘박씨전’ 이야기를 전하는데, 극중극 형식의 구조상 나레이션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동굴을 표현한 무대를 중심으로 한복, 탈, 부채 등의 소품이 단순하지만 우아한 멋을 풍긴다.

 

작곡가 김진희는 “음악적으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극중극 형식으로 서로를 연결시키는 것이었다”며 “판소리 풍의 느낌을 가미하면서 아쟁이나 해금과 같은 국악기도 추가해 우리나라 마당극 분위기를 내려고 했다”고 밝혔다.

 

 

극중에서 ‘가은비’ 역을 맡은 김이후 배우는 “대본을 읽으면서 작자미상인 이 작품이 ‘가은비’ 같은 인물이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이야기가 맞물리면서 진행되는 것이 감동이 컸다”며 “무대에 올려져 관객들을 만나는데 느끼는 게 많다”고 소감을 밝혔다.

 

‘후량’ 역을 맡은 조훈 배우는 “‘가은비’와 공간적으로 단절돼 있지만 최대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동굴 안에서 이야기하는 인물들과 밖에서 이야기하는 인물들이 서로 큰 영향을 줄 수 있게끔 신경을 많이 썼다”며 “뚜벅뚜벅, 사각사각 걷는 율동을 땀흘리며 연습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 여성영웅소설 ‘박씨전’을 주제로 하고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도 선정된 뮤지컬 ‘여기, 피화당’은 4월 14일 플러스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

고륜형 기자 krh0830@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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