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칼럼] 양극화 시대, 지금이야말로 교복이 필요하다

2024.03.05 06:00:00 13면

 

3월의 신호탄은 뭐니뭐니해도 개학이다. 새 교복을 입고 새 책가방을 든 신입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학교 교실. 이보다 더 정겨운 봄 내음이 있을까. 하지만 이 풍경은 추억의 앨범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어느 날, 65번 버스를 타고 귀가 중이었다. 버스는 잠시 신호등에 멈춰 섰다. 눈길을 사로잡는 간판들이 보였다. “행복사진관, 행복스튜디오, 옥스퍼드학생복, 이태리학생복, 요리제빵 학원.” 여기가 어디지? 너무도 정 겨워 그만 버스에서 내렸다. 수원 팔달문 근처, 그 거리를 따라 걸었다. 교복을 입고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던 학창시절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팔남매의 다섯째인 내게 교복은 전천후 옷이었다. 친구를 만날 때도 친척 결혼식에 갈 때도 심지어 소풍을 갈 때도 교복을 입었다. 이런 교복은 가난을 철저히 포장해 줬다. 내 인생에서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 만큼 찬란한 적은 없다. 그래서일까. 교복이 사라지는 게 싫다.

 

하지만 교복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교복은 일제의 잔재라는 둥 학생들을 정형화 시킨다는 둥 의견이 분분하다.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이니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다. 필자는 찬성론자 입장에서 교복의 필요성을 잠깐 피력해 볼까 한다.

 

 

교복은 18세기 가장 가난한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한 영국의 기독교병원학교(Christ's Hospital School)에서 시작됐다. 이때 학생들은 푸른색 레깅스를 입었다. 그 후 프랑스, 일본 등으로 전파됐다. 특히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1802년 고등학교를 설립하고 유니폼을 입도록 했다. 이는 현대까지도 이어졌다. 그러나 1968년 교육개혁이 이루어지면서 일부 사립학교를 제외하고는 교복을 폐기했다. 교육부장관 자비에 다르코스는 교복은 ‘사회 수준이나 재산의 가시적인 차이’를 없앨 수 있다며 프랑스 학생들의 교복을 부활하고자 애썼다. 하지만 교복이 개인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한다는 반대에 부딪쳤다.

 

이 논쟁은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 재점화 됐지만 결론을 보지 못했다. 2024년 현재 프랑스 정부는 교복 도입에 앞장서고 있다. 가브리엘 아탈 교육부장관은 교복이 학교 내 평등, 규율, 공동체 정신의 증진을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학생이 같은 옷을 입도록 함으로써 복장에서 드러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차별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학생들이 사회, 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우받는 환경을 조성한다.

 

교복은 또한 소속감을 갖게 한다. 학생들은 학교의 색상과 상징을 자랑스럽게 착용함으로써 교육 공동체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다. 교복을 입으면 매일 아침 복장 선택에 대한 부담도 덜게 된다. 학생들은 외모보다는 교육과 학교 활동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이는 수업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패션과 관련된 방해 요소를 감소시킬 수 있다. 이처럼 교복은 장점이 많고 유용하다. 경제적 격차가 지금보다 심화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학생들의 격차와 차별을 줄이기 위해서는 교복 착용이 큰 대안일 수 있다. 우리 학생들의 교복 폐지를 두고 말들이 많지만 좀 더 심도 있고 다양한 논의가 개진될 수 있길 바란다.

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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