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 언론에 대한 불신이 위험 수준이다.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최하위권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24년 로이터 저널리즘 연구소 조사가 반증한다. 조사대상 47개국 가운데 38위다. 이들 국가의 뉴스 신뢰도 평균인 40%에 크게 못미친 31%에 지나지 않았다.
매일경제신문은 11월 24일 인터넷판에 '이혼 전 딱 한번 했는데, 도장 찍은 다음날 임신 알아...42살 아내의 기막힌 사연, 결말은-'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포털 다음에서 많이 본 뉴스 1위를 기록했다. (무슨 이유인지 현재는 사라졌다). 한국 일등 경제지를 자처하는 신문의 기사 수준이다.
이런 난세에 두 언론사 기자들이 희망을 선사했다. 부산일보 박석호 기자와 CBS 노컷뉴스 네 기자(유동근·서민선·김세준·남성경)다. 박 기자는 11월 7일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에게 사과가 ‘두루뭉술하다’며 ‘무엇에 대해 사과한 것이냐’고 물었다. 2시간이 넘게 진행된 회견을 TV 생중계로 지켜보던 시청자들은 대통령의 추상적인 사과와 자화자찬에 답답해하고 있었다. 박 기자는 침착하면서도 단호하게 국민이 묻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상식 수준의 질문이었지만 그는 일약 스타 기자가 됐다. 그동안 대통령 기자회견이 얼마나 시청자를 실망시켰는지를 보여준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19일 국회운영위원회에 출석, 박 기자의 질문이 ‘대통령에 대한 무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언론계가 거세게 반발했다. 결국 발언 이틀 후 ‘적절하지 못한 발언을 한 점에 대해 부산일보 기자분과 언론 관계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사과했다.
CBS 노컷뉴스 기자들은 대통령의 골프 취재로 기자 정신을 발휘했다. 기자회견 이틀 후인 9일 태릉CC를 찾은 대통령 일행을 카메라에 담았다. 대통령의 골프 시점, 경호실의 취재 기자 과잉 제재, 대통령실의 해명까지 국민의 분노를 이끌어냈다. 대통령실은 CBS 취재 다음날인 10일 ”8년만에 골프채를 잡았다“며 ‘골프광인 트럼프와 ‘골프외교’를 위해 최근 골프 연습을 시작했다”는 코메디 해명을 내놨다. 명태균과의 녹음파일이 공개돼 대통령의 발언이 거짓으로 밝혀진 시기에 골프 친 사실까지 국민를 속이려해 분노로 들끓게 했다. 받아쓰기가 일상화된 언론풍토에 경종이었다.
미국에 탐사기자회(Investigative Reporters and Editors)라는 언론단체가 있다. 1975년 설립돼 곧 50주년을 맞는다. 약칭으로 분노를 의미하는 ‘IRE’라는 말을 사용한다. 탐사보도는 ‘분노’를 바탕으로 하는 보도라고도 한다. 미국의 경우지만 닉슨 대통령은 거짓이 들통나 하야했다.
헬렌 토머스라는 전설적인 백악관 출입 기자가 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부터 60년간 백악관을 출입하면서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여기자 였다. 지난해 그녀가 세상을 뜨자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여성 언론인의 벽을 허문 진정한 개척자”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기자에겐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 “대통령을 언제나 깨어있도록 하는 게 언론이다”라고 했다.
참언론의 맛을 보여준 두 언론사 기자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