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미국발(發) ‘관세 전쟁’에 대응해 유턴기업 지원 확대와 무역금융 강화를 골자로 한 긴급 지원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정작 25% 관세 폭탄을 맞게 된 반도체·자동차·철강 대기업에 대한 맞춤형 지원책이 빠져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유턴기업 세제 감면·보조금 확대…문턱 낮춰 지원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는 18일 '수출전략회의'를 열고 '2025년 범부처 비상 수출대책’을 발표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 장벽을 높이며 글로벌 무역 전쟁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자 내놓은 긴급 조치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해외 사업장을 정리하고 국내로 복귀하는 ‘유턴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다. 미국이 캐나다·멕시코산 철강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이들 국가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들이 해외 사업을 축소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존에는 해외 사업장을 정리한 기업만 유턴기업으로 인정하고 세제 감면을 적용했으나, 앞으로는 구조조정이 완료되지 않은 기업에도 법인세·양도소득세 감면을 추진하기로 했다. 유턴기업이 국내에 투자할 때 일부 금액을 지원하는 ‘유턴기업 보조금’ 지원 비율도 10%포인트 높여 최대 45%까지 확대했다.
또한 해외로 나갔던 하청·원청기업이 함께 국내로 복귀하는 ‘동반복귀 유턴’ 기업에는 보조금 가산 비율을 기존 5%포인트에서 10%포인트로 확대하기로 했다.
◇ ‘관세 대응 바우처’ 신설…무역금융 366조 원 공급
정부는 중소·중견기업을 위해 ‘관세 대응 바우처’ 제도를 신설해 해외 관세·법률 컨설팅, 물류법인, 시험인증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또 관세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기업에 대한 단기수출보험료 60% 할인, 보상금 지급 기간 단축(2주→1주), 보험금 지급 속도 개선(2달→1달) 등의 대책도 포함됐다.
올해 무역금융 지원 규모는 역대 최대인 366조 원으로 확대되며,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무역보험 지원도 100조 원에 달한다.
◇ 반도체·철강·자동차 대기업 대책은 빠져
그러나 관세 부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철강·반도체·자동차 업계를 위한 실질적 지원책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현재 한국 철강업계는 ‘수입 쿼터제’(연간 263만t 수출 제한)를 적용받아 관세 면제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폐지하고 25% 관세를 부과할 경우, 미국 내 한국산 철강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출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반도체·의약품 등에도 추가 관세가 예고된 상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기아, 포스코홀딩스 등의 피해가 예상되지만, 이번 정부 대책에는 이들 대기업을 지원하는 맞춤형 조치가 포함되지 않았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부 대책은 사실상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지원에 집중돼 있고, 대기업들은 스스로 버티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번 관세 부과로 한국 수출의 핵심 산업이 위협받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정부 “불확실성 커…대응책 지속 보완할 것”
정부는 “미국 행정부 조치가 계속 나오는 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며 “현재 상황에서 필요한 대책만 우선 발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미국발 통상 전쟁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국가별 명암이 엇갈릴 것”이라며 “역대 최대 규모의 무역금융과 수출 품목·지역 다변화 대책 등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관세 폭탄의 충격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변죽만 울리는 대책으로는 수출 경쟁력을 지킬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