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헌의 심우도] 일인지하 만인지상

2025.06.23 06:00:00 13면

새 정부도 여전하면, 퇴폐의 이 언어를 어찌할꼬...

 

언론을 상대하는 업무를 맡는 분들에게 긴히 청한다. 사람을 하늘처럼 받들겠다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반(反)민주적인 이 퇴영적(退嬰的) 언어로 (나를 비롯한) 숱한 ‘인간’들이 통칭될 줄은 몰랐다. 누구라고 기분 개운할까?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에 관한 몇 언론의 글들에,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관형사’가 떠억 그 명칭(총리) 앞에 또 붙었더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의 집합(개념)인 만인은 그 일인(대통령)의 아래(一人之下)이면서 동시에 총리의 아래(萬人之上)라는 직설적 언어다. 임금 말고는 모두가 그의 아래라는, 왕조(王朝)시대 영의정의 위상을 표현하던 말이다.

 

대통령이나 그의 대변인, 또는 총리 후보가 그런 말이나 연상(聯想)작용을 부를 개념을 썼을 리는 없다고 본다. 벼락 떨어질 것이 빤히 보이지 않는가.

 

‘대통령의 입’ 강유정 대변인은, ‘어공’이지만, 언사(言事) 계통의 ‘국대급 선수’로 글 계통에서 눈길을 많이 받던 세련된 문필가다. 한국어의 구조, 작동의 원리를 꿴 듯한 평이(平易)하면서 명료한 문체가 특징이다. ‘기자들의 글’도 아는 인사다.

 

현실적으로는 논란도 있을 수 있지만, 대통령과 총리가 사람 또는 (유권자이면서 납세자인) 시민의 윗길이라는 건 도리(道理)에도 정치적(기준)으로도 적합지 않다. 더 꺼내기 싫은 얘기지만, 리박(리승만 박정희)시대 쯤의 구태(舊態) 아니냐.

 

허나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강 선수’쯤 되면, “제발 이런 구시대의 망발(妄發)같은 언어가 이제는 안 나오도록 조심해 주시오.”라고 기자들에게 요구를 했어야 하지 않을까? 대변인 조직 구동(驅動)의 ‘안전장치’로 삼을 수도 있겠다.

 

‘만인지상’의 속뜻을 모르고 여태 해오던 대로 관행적 관습적 말투로 쓰지 않았을까? 언론 동업자로 더 부끄러운 상황이지만, 남의 글 베껴 쓰다 난 ‘사고’였을 수도 있다. 그러다 대통령이나 대변인의 의도와는 판이하게, ‘지 혼자만의 문법’을 펼치게 된 것은 아닐지.

 

50여 년 전 대통령 박정희가 ‘한자 지우고 한글로만 쓰라’고 한 후 한국어는 발음기호 모음처럼 됐다. 한자를 알던 이들은 상당 기간 별로 불편하지 않았을 수 있다. 허나 점차 한국어(어휘)의 여러 뜻들이 구름과 안개 속에 갇히게 됐다. 최근 문해력 파동의 원인일 터다.

 

지금도 한자 숙어(熟語)에 유식한 (체하는) 이들, 특히 일부 정치가들은 시민 대부분이 ‘한자 없이 교육받은 언중(言衆)’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맹자왈공자왈 맹꽁타령 못 버리더라. 하릴없이 아우세대 자녀세대는 바보행세를 해줘야 하는지.

 

글쟁이로 사족(蛇足 뱀다리)같은 이런 말 덧대는 것은 후배세대에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자괴감이면서, 소통의 이런 불협화(不協和)가 빚을 더 큰 재앙을 저어함이다.

 

대변인 등 공보 (기업)홍보 등의 업무를 맡는 이들은 늘 말과 글을 청명(晴明)하게 빗질하는 중요한 직책이다. 보도자료 작성 같은 언어 작업에서 시민 또는 소비대중과 각급 언론(인)의 수준에 보다 정밀하게 초점 맞추자는 청을 드리는 까닭이다.

 

이런 사례, 공보-언론 같은 전문가 사이의 정밀한 소통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상 말귀와 글눈 틔우는 계기로 삼자.

강상헌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