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표절

2025.07.08 06:00:00 13면

 

표절(剽竊)은 지식인사회,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세계에서 타인이 인생을 걸고 몰두하여 이룩한 결실을 가져다가 자신의 것으로 하는 짓이다. 절도(竊盜)다. 이 악행은 시공을 초월한다. 저열한 욕망에 추동되는 그 특이종자들의 비루한 행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하다.

 

약 2500년 전, 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노동없이 영예를 얻고자 하는 인간의 타락한 욕망이 표절을 낳는다." 


그 시대에도 이미 표절이 만연되어 있었던 것이다. 실은 그 보다 더 오래 전, 수메르 시대(대략 기원전 4500년~1900년)의 대홍수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와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흡사하다. 히브리족이 수메르 신화를 사실상 베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이라고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들도 사상과 저술의 차용과 모방이 극심하여 표절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지적소유권 개념이 없던 당시의 먹물들은 그 지식절도범들을 '흉악한 쌍놈'들로 취급했을 것이다.

 

그 피해자들의 상심과 분노가 '표절'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 동의어들 글자 속에도 같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서양이 똑같다. 고대 로마 사람들이나 동양 사람들이나 침해당한 사람의 마음이 다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표절(剽竊)의 剽(표)는 칼(刂)을 들고 부자를 겁박하는 형상을 나타낸다. '훔치다'의 뜻을 가진 竊(절)은 원래 곡식창고에서 쌀벌레들이 쌀을 갉아먹는 모습을 표현한 글자였다. 칼을 든 강도나 쌀벌레나 본질은 같다. 그렇게 남의 사상이나 주장, 연구결과를 가져다가 자신의 것처럼 설파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표절’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抄襲(초습)은 표절과 같은 말이다. 남들이 피땀 흘려 농사지어 얻은 열매들을 적군을 습격(襲)하듯 덮쳐서 빼앗아가는(抄) 강도행위를 일컬었다. 발음이 같은 剿襲(초습)도 동의어다. 칼(刂) 든 강도가 남의 재물을 차지하기 위하여 기습하는 행위다. 둘 다 원뜻은 살인무기로 적을 습격하여 처단하고 쓸모 있는 것-먹거리, 농기구, 부녀자-들은 강탈하는 만행이었다. 그 잔혹행위인 표절과 초습이 다른 사람의 지적 성과를 도둑질하는 무혈의 범행을 이르는 어휘로 그대로 쓰이고 있다. 이는 표절이 참으로 엄중한, 실은 무시무시한 윤리적, 법적 사안이라는 뜻을 웅변한다.

 

영어로는 표절을 plagiarism이라고 한다. 라틴어의 plagiarius(유괴범)에서 왔다.이는 plagium(납치)에서 왔다. 이는 또 plaga(올가미)에서 왔다고 한다. 고대 로마의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Martialis)는 자신의 시를 도용한 시인을 plagiarius(유괴범)이라고 부르면서, 남의 창작물을 훔치는 것을 어린 아이나 연인을 납치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 어원적 의의는 오늘 이 시간에도 유효적절하다. 대학에서 권력자인 교수가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는 작태는 도둑질이면서 폭력이고 인권유린이다. 만행이고 패륜이다. 그런 자가 교육부 장관 되겠다고 꿈에 부풀어 있다. 이진숙 교수는 그런 제자들 논문 표절한 건수가 10편이나 된다고 한다. 

 

지난 겨울, 우리는 추위와 공포에 떨면서 북만주 독립군들의 마음으로 혹한을 넘었다. 나라를 벼랑에서 구했다. 겨우 이 따위 저품위 교수를 출세시켜주려고 거기서 그 차가운 시간에 어느 때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자진사퇴하라.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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