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특집] 줄어든 아이들, 무거워진 교실…여름방학이 달라졌다

2025.07.09 14:22:11 6면

청솔중·창용중…학령인구 감소로 사라지는 학교들
각종 업무 몰리는 여름방학, 형식적 '행정'으로 고통
A씨 "동료에게 '방학 때 출근하라'고 조언할 수밖에"
부족한 '중장기적 대응 전략'으로 시스템 붕괴 우려

 

"아이들은 줄었지만 일은 더 많아졌어요. 방학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9일 수원 한 초등학교 교사의 이 말은 최근 여름방학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여름방학이 이제는 '없어도 그만'인 시기가 돼가고 있다. 

 

방학 풍경이 달라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교육 현장은 '학생 맞춤형' 교육을 표방하고 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위해 필요한 업무는 증가하지만 정작 교사의 수는 감소세를 보인다.  

 

교실 속 아이들은 줄었지만 빈 교실을 채워야 할 교사의 일은 되레 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방학의 의미와 교육의 무게가 모두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청솔중·창용중…학령인구 감소로 사라지는 학교들

 

전국적인 학령인구 감소는 학교 분위기 전반에 변화를 주고 있다. 2010년대 초반 60만 명에 달하던 초등학교 입학생 수는 2025년 현재 38만 명대로 추락했다. 

 

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의 학교는 학생 수 부족으로 복식학급, 통폐합이 일상화됐고 도시 학교조차 '학년당 1학급'이 흔한 풍경이 됐다.

 

올해 경기 지역에서는 학생 수가 부족해 문을 닫은 학교가 6곳에 달했다. 그 중에는 1기 신도시인 성남 분당의 청솔중학교가 포함되며 인구 위기를 실감하게 했다. 수원에서도 개교 44년을 맞은 창용중학교가 폐교 수순을 밟게 됐다. 

 

그러나 아이가 줄었다고 교사의 업무가 줄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 비율은 더 작아져 단독 담임 부담이 커지고 인원은 적지만 '교육소외'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더 세심히 챙겨야 하는 상황이다.

 

한 중등교사는 "애들은 줄었는데 교무행정업무는 예전 그대로"라며 "학교장이나 교육청은 '학생 수 감소로 여유롭겠지'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쏟아지는 정책들로 정반대다. 교사들은 더 촘촘하게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각종 업무 몰리는 여름방학, 형식적 '행정'으로 고통

 

여름방학 중에도 교실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늘봄학교, 방과후학교, 방학 중 돌봄, 각종 공문 업무가 몰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방학 중 교사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행정 업무다. 교사가 교육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 업무 경감에 대한 많은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현장에서는 체감이 어렵다. 

 

특히 교육과 동떨어진 '행정 시간표'는 오히려 교육의 리듬을 망치고 있기까지 하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는 지금, 교사들은 2학기 평가계획서를 미리 제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성적 처리, 학생부 작성,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 등 학기 중 업무를 병행하며 형식적인 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간제 교사 채용 등으로 아직 2학기 과목 담당 교사가 정해지지 않은 학교도 있다. 이처럼 무의미한 2학기 평가 계획서는 불필요한 업무 가중이 돼 교사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김희정 경기교사노동조합 대변인은 "변화하는 2학기의 현장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행정 절차'와 교육당국 편의에 맞춰 학교 일정이 돌아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경기교사노조가 실시한 교수학습 및 평가운영계획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장 교사들은 "형식에 매몰된 과도한 문서 행정이 교육을 왜곡하고 있다", "계획서를 쓰느라 학생과 눈을 맞추고 수업을 설계할 시간조차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 부족한 '중장기적 대응 전략'으로 시스템 붕괴 우려

 

교육당국은 늘봄학교, 돌봄교실, 교육복지 등 학생 맞춤형 교육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절대적인 인력 부족과 시간 부족을 호소한다. 

 

한 학생 맞춤형 사업을 중점적으로 운영하는 학교의 교사 A씨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전문인력이 적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업무 팁을 알려달라고 하는 동료 교사들에게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고, 방학 때 출근해달라'는 말밖에 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현장 상황에도 교육당국의 중장기적인 대응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한 교사 수급 계획, 방학 중 업무 조정, 교실 내 역할 재조정 등이 모두 더뎌지고 있다. 

 

15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한 초등교사는 "지금처럼 학교와 교사에게만 부담을 떠넘기는 식이라면 몇 년 안에 시스템이 붕괴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처럼 교사들이 불필요한 업무와 인력 부족으로 인한 업무 과중 속에서 허덕이는 사이, 교육 당국은 오히려 교원 수를 줄여나가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만 2232명의 교원을 감축하며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현장의 교사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변명이다. 

 

아이들의 웃음으로 채워졌던 여름방학의 학교는 이제 전보다 조용하다.학생들은 줄어들지만 교사들은 복잡한 계획서와 행정업무에 파묻히고 있다. 미래를 향한 교육은 여전히 계속되지만 그 무게를 나누는 방식은 여전히 틀에 갇혀 낡은 상태다. 

 

학교가 여름방학을 필요로 했던 건 단지 쉼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음 학기를 준비하고, 교실을 다시 숨 쉬게 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방학은 그 본래의 목적을 잃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사라진 교실에서 교사들만 지쳐가고 있는 여름, 방학은 누구를 위한 시간이어야 하는지 되물어야 할 시간이다. 
 

[ 경기신문 = 박민정 기자 ]

박민정 기자 mfth@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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