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묻다] “왜 집에는 안전 인증도, 표준 가격도 없을까?”

2025.07.31 06:00:00 11면

 

얼마 전 비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하에 살고 있는 이웃들의 얼굴이 떠올라서다. 폭우가 지나간 후 연일 낮 기온이 최고치를 경신한다는 뉴스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고시원이나 옥탑방에 거주하는 분들의 안전이 염려된다. ‘지옥고(지하, 옥탑, 고시원의 줄임말)’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주거 현장을 둘러보면, “이런 집도 세를 받는구나” 싶을 만큼 열악한 곳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우리는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를 ‘의식주’라 부른다.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사는 곳은 단순히 존재만으로 그치지 않고,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그 품질에도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먹는 것과 사는 곳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만 놓고 보면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는 먹거리에 쏟는 관심만큼, 우리가 머무는 공간에도 같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식품은 국가나 공신력 있는 기관의 철저한 안전성 및 품질 인증을 거치고, 부당하게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지 않도록 권장소비자가격이 설정되기도 한다. 심지어 2000원 짜리 소스를 사도 부정·불량 식품을 신고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쓰여있다. 그런데 집은 어떨까. 어떤 주택이 거주하기에 안전한지, 최소한 건강을 해칠 정도로 열악하진 않은지를 공식적으로 점검하거나 인증하는 제도는 사실상 없다. 주택이 크기·위치·상태에 비추어 적정한 가격에 임대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장치도 마찬가지로 부재하다. 심지어 임대료를 받고 세를 놓는 주택들 중 상당수가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있지 않아 관리나 감독의 손길이 미치기 어렵다. 그 결과 많은 시민이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집에 비싼 값을 치르며 살면서도, 문제가 생겨도 쉽게 대응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있다.

 

물론 주택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는 사적 재화이며, 입지나 상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은 식품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식품에 대한 품질 평가와 가격 통제 등 공적 개입이 이뤄지는 이유는, 식품이 시민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건강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방금의 문장에서 ‘식품’을 ‘주택’으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이미 영국과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임대주택 인증제’나 ‘표준임대료’를 도입하여 시민의 주거권을 보호하고 있다. 공공기관이 주거의 질을 공식적으로 평가하고,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대해서는 개선 명령을 내리거나 임대를 제한하는 방식도 활용된다.

 

그래서 “왜 집에는 안전마크도, 표준 가격도 없을까?”라는 질문은, 주거의 질과 비용을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두는 현재 방식이 과연 타당한지 되묻는 것이다. 주거 문제를 개인의 선택과 책임, 개별 계약의 결과로만 간주하는 한,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의 위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고령자, 이주민, 장애인, 저소득 가구 등 주거 선택의 폭이 제한된 이들에게는 그 위험이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주택 대출 제도에 관한 관심도 필요하지만, 주택의 질과 가격을 인간다운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에도 보다 적극적인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절실하다.

김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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