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살예방의 날] 줄지 않는 극단적 선택 '자살 공화국' 오명…"뼈대 바꿔야"

2025.09.09 14:33:54

극단적 선택 매년 증가 추세…OECD 국가 1위
'보여주기 식' 머무르는 정책 접근성 높여야

 

매년 9월 10일은 세계자살예방의 날로 극단적 선택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제정된 기념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극단적선택 비율이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아 '자살공화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 극단적 선택 매년 증가에 지워지지 않는 '자살 공화국' 오명

 

9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인원은 1만 4439명으로 2011년 이후 최대치를 달성했다. 2022년은 1만 2906명, 2023년에는 1만 3978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로 나타났다. 2022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23.2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숨지는 수치로, 이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1위인 데다 평균의 2배를 뛰어넘는다.

 

국내에서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사건은 사회 각기 계층에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군에서는 지난 8일 고양시 육군 한 부대에서 20대 중사 A씨가 숨진 채 발견됐으며, 2일 대구 수성못 인근에서는 육군3사관학교 소속 대위 B씨가 총상으로 사망했다.

 

소방당국에서는 이태원 참사 당시 현장에 출동한 후 우울증을 앓던 소방대원 C씨가 지난 8월 20일 시흥시 금이동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인근 교각 아래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군과 소방당국, 경찰이 오히려 정신적 압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령대별로 보면 50대가 전체 자살 사망자의 21.0%로 가장 많고, 40대가 19%, 60대 16.5%, 30대 13.4% 순이었다. 어린 10대 청소년들도 극단적 선택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생 가운데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이들은 221명으로 전년도인 214명보다 증가했다.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 전국 초·중·고교의 자살위험군 학생은 총 1만 7667명으로 대책이 시급해 보인다.

 

◇ 그동안 손 놓고 있나…미흡한 예방 정책과 현실

 

매년 극단적 선택으로 숨지는 인원이 나오지만 정작 국내에선 이에 대한 대응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대한민국 극단적 선택 예방 정책이 '현실'이 아닌 '홍보'에 지나치게 머물러 있다고 비판한다.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 광고 및 영상매체를 활용한 홍보는 이뤄지지만, 정작 고위험군의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 현실적으로 실행해야 할 방책이 실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극단적 선택 위험자가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면 지원에 나서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임상심리사는 전국 평균 1인당 25.3명을 관리하며, 최대 106명을 담당하는 등 과도한 업무를 해결해야 하지만 초봉은 월 228만 원으로 근무 환경은 미흡하다.

 

올해 자살예방 예산은 총 782억 원으로 2021년 일본이 8300억 원 가량을 예산으로 사용한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지난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심리상담비용을 지원하겠다며 '전 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을 실시해 올해 383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결국 엉뚱한 곳에서 예산이 새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심리상담가는 "고위험군을 직접 만나 상담을 진행하고, 사례 관리와 같은 행정업무도 진행해야 하지만 인력과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대한민국 극단적 선택 예방책은 전 국민을 상대로 극단적 선택 예방을 홍보하는 선에서 그치는 수준이며 정작 고위험군을 위한 제도는 전무하다. 사실상 실패한 정책들"이라고 비판했다.

 

◇ "쉽게 찾기 어려워요" 접근성 높도록 뼈대 바꿔야

 

전문가들은 보여주기 식이 아닌 체감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자살 예방 정책의 뼈대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설명한다.

 

우선 고위험군에 빠지기 전 우울증 등 정신 질환에 대한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심리상담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가령 민간에서 운영하는 심리상담실의 경우 1인당 1회 10만 원 이상 비용이 들어가다 보니 쉽게 방문하기 어렵다. 이는 병원에서 진행되는 심리 치료도, 보험이 적용되지 않느 경우가 있어 마찬가지다. 심리상담 경험이 있는 한 시민은 "우울감에 빠져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심리상담실을 찾았는데, 너무 가격이 높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며 "치료 기간 동안 효과가 있었지만 더이상 치료를 진행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군인과 경찰관, 소방관을 대상으로 한 심리상담도 예산을 늘리는 것 뿐만 아니라 상담 자체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 한 소방당국 관계자는 "현재 소방관이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제도는 마련됐지만, 시간이 나질 않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며 "열악한 인력 부족 문제에 한 명이 심리상담 치료로 근무를 빠지면 다른 동료가 더 고생을 하는 구조다.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극단적 선택 고위험군에 대한 지원 강화를 위해 정신건강복지센터 임상심리사 증원 및 예산 확충으로 근무여건을 개선이 필수적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한 임상심리사는 "대한민국에서는 그동안 치열한 경쟁사회적인 분위기와 정신질환에 대한 편협적 시각이 극단적 선택 원인으로 꼽혔지만, 부족한 정책도 한 몫을 차지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만큼 비극적인 일이 없다.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해 더 늦기 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1일 이재명 대통령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해 "주요 국가의 자살률이 감소 추세를 보이는데 우리는 20년 넘게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자살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한 채 정책 흐름 전환을 촉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제9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열어 2025년 국가자살예방전략 등을 논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설 전망이다.

 

[ 경기신문 = 박진석 기자 ]

박진석 기자 kgsociet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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