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전시] 익숙한 사물이 낯선 무대로…관객이 퍼포머가 되는 순간

2025.09.14 16:56:13 10면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 '2025 아워세트: 김홍석×박길종'

 

전시장은 멈춘 듯 고요하지만 작품은 관람객의 몸짓을 따라 다시 흐른다.

 

관람객이 움직이는 보행기가 덜컹이며 전시장을 비추는 순간 정지된 전시의 시간은 공연처럼 살아난다. 극사실 조각 옆에 놓인 짧은 텍스트는 목소리처럼 말을 걸고 사소한 사물은 낯선 질서로 조립된다.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의 ‘2025 아워세트: 김홍석×박길종’은 관객을 단순한 구경꾼이 아닌 무대 위 퍼포머로 세우며 미술의 경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2025 ‘아워세트(Our Set)’는 협업의 형식을 넘어 매체 자체를 전복하는 두 작가의 태도에 주목한다. 사회적 제도와 규범을 낯설게 전환하는 김홍석, 일상적 사물에서 새로운 질서를 길어내는 박길종. 서로 다른 세대와 배경의 두 시선은 같은 무대 위에서 겹쳐지며 낯선 풍경을 펼쳐낸다.

 

이에 이번 전시는 이러한 두 작가의 매체 실험에서 뼈 있는 농담의 무대를 발견하고 이를 네 개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첫번째 ‘러닝타임(Running time)’은 전시의 초입, 중간, 출구에 놓여 정지된 전시의 시간을 마치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공연처럼 작동시키는 박길종의 사물+오브제를 소개한다. 유모차를 개조한 ‘전시 보행기’(2023)는 관람객이 직접 끌어야 완성된다. 손잡이에 가방을 걸고 기대어 전시장을 움직이는 순간 관람객은 사용자이자 퍼포머가 된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2025)는 자전거 부품과 청소도구함을 결합해 전조등과 후미등을 켜고 전시장을 누비는 순간 여가와 노동의 풍경을 겹쳐 놓는다.

 

 

‘오픈 스테이지(Open stage)’에서는 김홍석의 작품이 무대를 채운다. ‘침묵의 고독’(2017·2019)은 동물 가면을 쓴 듯한 극사실 인체조각에 짧은 소개문을 덧붙여 보통 사람들의 삶을 퍼포먼스처럼 불러낸다. 조각 옆의 글은 노동과 윤리, 위계가 교차하는 장면을 드러낸다.

 

‘Oval Talk’(2000, 2006-2007 재제작)에서는 타원형 조각 속에서 구의 기원에 관한 신화가 흘러나온다. ‘여덟 개의 숨’(2014)은 반복되는 행위의 고통을 깨닫고 풍선을 청동으로 치환한 작업으로, 재료 선택과 지속의 의미를 드러낸다.

 

 

‘인터미션(Intermission)’은 가지 작업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대와 환경 속에서 작품 활동을 지속해 온 두 작가의 차이점을 환기한다. 김홍석의 ‘사군자-231234’(2023)는 서구적 재료로 전통 사군자를 그려낸 작품으로 번역된 근대성의 문제를 은유한다.

 

또 박길종 ‘개미굴 체스’(2023)는 도시재생이 한창이던 2000년대 후반 이태원·을지로·창신동 등지의 풍경 속 어긋난 파편을 포착한 시선에서 출발, 기물 없는 체스판을 통해 텅 빈 신도시의 공허함과 우화를 드러낸다.

 

 

‘백스테이지(Backstage)’ 공간에서는 박길종의 '사물+오브제'를 무대 이면의 백스테이지처럼 소개한다. ‘여름 그늘’(2023)은 하수구 뚜껑 사이로 돋아난 식물에서 착안해 조명과 배수구, 화분을 결합했다.

 

고통의 눈물을 닦아주는 ‘휴거(휴지거치대)’(2023), 속죄와 구원의 불빛을 태우는 ‘장 발장’(2023), 형태의 닮은 꼴이 말의 리듬으로 연결되는 ‘세 집, 쓰리 캐슬’(2023) 등에는 이질적인 것을 메우는 물질적 상상력과 농담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설치, 드로잉 등 총 27점으로 구성됐다. 대표작 외에도 두 작가가 축적해온 다양한 실험이 전시장 곳곳에 배치돼 관람객은 작품과 텍스트 사이에서 저마다의 드라마를 발견하게 된다.

 

‘2025 아워세트: 김홍석×박길종’은 오는 10월 12일까지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열린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

류초원 기자 chowo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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