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완전한 옷은 완전한 몸을 완성한다…'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

2025.09.16 13:35:07 10면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 - 안도현

 

◇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 / 안도현 지음 / 모약 펴냄 / 몰개 / 164쪽 / 1만 4000원

 

옷을 입고 나서/ 사랑에 빠질 사람을/ 떠올려보는 순간이 좋았다/ 몸은 완전하지 않다/ 사람마다 그 형태도 다르다/ 완전한 옷은 완전한 몸을 완성한다. (본문 中)

 

안도현은 늘 독자들에게 다채로운 얼굴로 기억되는 작가다. 안도현은 '연탄재' 시인으로,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때로는 '간장게장'의 트라우마를 안겨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는 옷과 몸, 그리고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따라가며 인간 존재와 자유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 책은 소설처럼 줄글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 페이지, 한 장면마다 응축된 언어로 쓰여 있어 시를 읽듯 천천히 음미해야 한다.

 

책 속 화자는 대학원 과제로 할머니의 의복 변천사를 기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가족에게조차 잊힌 존재였던 할머니의 흔적을 좇던 화자는 아버지의 지갑 속에 숨겨져 있던 한 장의 흑백사진을 발견한다.

 

판탈롱 나팔바지에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젊은 여인, 조방아. 그 순간부터 할머니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재봉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소녀는 밀양의 부잣집에 시집가 양장점을 차리고 이름을 알린다. 그러나 시댁의 억압과 남편의 무관심 속에서 결국 쫓겨난다.

 

이후 홀로 서울로 올라와 다시 양장점을 열고 최고의 패션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지만, 마흔여덟에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 한국과의 인연을 끊는다. 화자는 이 일대기를 기록하며 외롭지만 당당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할머니의 삶을 다시 붙잡는다.

 

책의 마지막 화자는 할머니의 사진 뒷면에 이렇게 적는다.

 

"그 누구를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수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간 나의 할머니. 외로워서 더욱 빛이났던."

 

이 문장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울림처럼 다가온다. 옷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몸을 감싸는 언어이며 시대의 억압과 해방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안도현은 옷을 통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묻고, 동시에 자유를 꿈꾸었던 한 여인의 생을 기록한다.

 

'판탈롱 나팔바지 이야기'는 장르의 경계를 가볍게 넘어선다. 시 같고, 소설 같고, 때로는 동화 같으며 동시에 한 여성 패션디자이너의 파란만장한 삶에 바치는 헌사다.

 

안도현이 IMF 시절 '연어'로 독자들에게 위안을 건넸듯 이번에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선 청춘들에게 '자유를 향해 나아가라'는 응원을 전한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 낯설고 새로운 세계로 향하라는 목소리가 책의 모든 페이지에 담겨 있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

류초원 기자 chowon@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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