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농어촌공사(한농공)가 수도관 업체들이 입찰을 담합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는데도 손해배상청구 등 조치 없이 그냥 넘어가 2억 3000여만 원을 못 받아낸 것으로 드러났다. 소송 담당자가 바뀌는 과정에서 업무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그 사이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일부 만료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와중에 한농공은 담당자들에게 승진 기회와 성과급을 준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0일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감사원의 '입찰담합사건 관련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농공은 2020년 조달청으로부터 총 111건의 폴리테틸렌 피복 강관 생산 업체 담합 사건 내용을 전달받았다.
한농공은 3년 뒤에 뒤늦게 후속 조치를 진행하면서 일부 소멸시효가 만료된 사건을 놓친 것으로 파악됐다.
2012년 7월부터 2015년 11월까지 한농공이 의뢰해 조달청이 입찰 공고를 낸 '폴리에틸렌 피복 강관 다수 공급자 계약'에서 10곳의 업체는 서로 공모하고 낙찰 예정사와 제안 가격을 합의했다. 낙찰받은 물량은 담합 참여사끼리만 나누는 등 입찰을 담합한 것인데, 2020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에 발각됐다. 담합에 따른 인정손해액은 약 15억 원에 달한다.
같은 해 9월 조달청은 한농공에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 시효가 도래하기 전, 담합한 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라" 취지로 2차례에 걸쳐 공문을 보냈다. 한농공의 소송 담당자 A씨가 공문을 접수했지만 "시효가 약 2년 남아있다"는 이유로 상급자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이후 2021년 2월 A씨의 인사이동으로 인해 업무 담당자가 B씨로 바뀌었다. A씨는 인사이동 전날 동료를 통해 후임자인 B씨에게 업무 인계자료를 전달했고, 이 자료에는 담합 업체 사건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약 일주일 뒤 A씨를 만나 대면 업무 인계를 받았지만 소송 관련 내용은 전달받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1년간 파일을 확인하지 않았던 B씨가 2022년 1월 다른 부서로 이동했고, B씨는 후임자 C씨에게 관련 업무 인계자료를 전달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해당 부서 부장인 D씨도 시스템을 통해 조달청 공문을 공유 받았지만, 소송을 지휘·감독하지 않았다"도 지적했다.
한농공 관계자들은 2023년 8월 29일에 소송을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시흥 은계·목감·장현 지구의 주민대책위원회가 "인근 상수도관을 통해 나온 수돗물에서 이물질이 발견됐다"며 감사원 공익 감사 청구를 접수해 한농공 외부 감사가 시작되면서다.
한농공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미 2022년 11월부터 2023년 8월 사이 111건의 담합 사건 중 18건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황었다. 한농공은 인정손해액 15억 원 중 약 2억 3000만 원 가량을 보전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가운데 업무 책임자였던 A·B·D씨는 매해 약 2000만 원 가량의 성과급을 지급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들이 3급에서 2급으로 승진해 현재 지사장·부장 직함을 달고 잇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한농공은 올해 2월에 이들에게 서면으로 주의 처분만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해 문 의원은 "이번 사건은 인수·인계를 안 한 직원들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며 "한농공이 보고 체계 전반을 재점검하고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한농공은 "부서 차원의 통제 장치가 미흡했던 측면이 있었다"며 "올해 3월 인계·인수 전자 시스템을 도입했고, 외부 문서 접수 시 차별화 표시를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경각심을 제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경기신문 = 안규용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