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의 달리는 열차 위에서] 위험해지는 세계

2025.10.21 06:00:00 13면

 

“아빠, 전세계에서 전쟁이 터질 것 같애” 며칠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아들의 격앙된 목소리였다. 20대 후반인 아들이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가 요즘 온통 전쟁위기란다. “우크라이나, 가자지구도 그렇고, 중국이 대만을 곧 침공할 것이라 하고요. 지금 미국 안에서도 난리가 아니잖아요. 북한도 요즘 심상찮데요. 아.. 난 아직 동원예비군인데..” 한참을 고민했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급발진하는 청년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이는 것이 능사일까?

 

문제는 더 위험해지는 세계를 공포로만 대하지 않고 원인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힘을 길러야 할텐데 말이다. 역사적으로 극우파시즘은 공포와 분노를 먹고 자란다. 전쟁은 늙은이들이 결정하고 젊은이들은 전장에서 쓰러진다. 내가 보기에 정작 전쟁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전쟁을 대하는 반지성주의이다. 

 

트럼프가 방위비를 GDP대비 5%까지 올리라고 압박하면서 K-방산이 호황이란다. 여기에서 돌아보자. 전쟁위기가 커질수록 가장 덕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군수산업이다. 그중에서도 국방예산에 관해선 압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에게 가장 큰 파이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 2025년 미국의 국방예산은 9628억 달러, 전세계 국방예산 상위 2~15위 나라를 다 합한 정도이니 말 다했다.

 

19세기 중반 영국과 중국의 아편전쟁은 무역역조 때문에 발생했다. 영국은 인도에서 목화를 생산해 중국에 팔고 중국에서 비단, 도자기, 향료, 중국차를 사갔다. 문제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중국차에 대한 기호가 엄청나게 높아져 심각한 무역역조가 발생하면서 부터였다. 다급해진 영국은 인도의 아편을 중국에 팔기 시작했다. 그 결과 왕실 수입원의 1/6이 중국과 아편무역을 통해 들어온 반면 중국은 전체인구의 10%가 아편중독에 빠져버렸다. 내 눈에는 지금 전쟁위기를 부추기면서 무기를 팔아먹는 행태가 영국이 아편을 팔아먹는 모습과 닮았다.

 

관건은 미중의 패권경쟁이다. ‘투키디데스의 함정’(Thudydydes trap-앨리슨)이란 개념이 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및 여타 역사적 경험을 분석하며 패권국이 쇠퇴하고 신흥국이 부상하는 시점이 무력충돌의 위험이 가장 크고 전쟁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다(16개 사례 중 12개 해당). 앨리슨은 이 개념을 미중의 패권경쟁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이럴 때 패권국의 의도대로 편가름에 휩쓸리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패권전쟁은 대부분 예방전의 성격으로 전개된다. ‘적국보다 힘이 앞설 때 전쟁을 벌이는 것이 낫다’는 합리적 이유로 예방전을 검토하게 된다. 그런 이유에서 한반도는 더더욱 위험하다. 트럼프는 잠재적 적국 뿐만 아니라 야당 시장이 있는 도시를 ‘적국 점령지’로 간주한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뉴욕, 로스앤젤레스 그곳들은 내부에서 벌어진 전쟁터다. 이런 도시들을 우리 군대, 주방위군의 훈련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런 비이성적인 극우맹동주의가 패권국의 수장이라니 끔찍할 뿐.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이스라엘의 야만적인 봉쇄를 뚫고 가자에 아기 분유와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 민간선박들이 '글로벌 수무드 함대'를 조직했다. 미국에서는 No Kings Day시위가 수백만의 시민을 불러모았다. 희망은 연대에 있다. 광인의 소용돌이에 희말리지 않고 시간을 벌며 깨어있는 세계와 손을 맞잡는 것만이 살길이다. 

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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