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의 말에게 말 걸기] ‘교양 있는 사람’이 있는 곳

2025.10.30 06:00:00 13면

 

한 세대 전만 해도 많이 쓰였는데, 요즘 와서는 그 쓰임이 현저하게 줄어든 말로 ‘교양’이란 말을 들고 싶다. ‘애국심’, ‘효도’, ‘순종’, ‘인내’ 등과 같은 말도 그런 편에 드는 것 같다. ‘교양’을 비롯하여, 위에 나열한 말들이 품고 있는 어떤 가치가 요즘 사람들에게 크게 호소력을 발휘치 못하는 현상을 언어가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의 가치인 듯한데, 그런 가치도 이렇게 시대의 흐름(時流)이나 인심의 쏠림에 영향을 받는다.

 

‘교양’이란 말이 지닌 의미가 퇴색해 보이고, 올드(old)해 보인다면, 그건 교양의 쇠퇴를 암시한다. 교양이 중요하다고 해서 다가갔지만, 어떤 매력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리라. 게다가 교양의 자리로 밀고 들어 온 다른 가치들의 기세가 참으로 드세다. 당장의 실용적 쓰임이 약하고, 돈벌이에 써먹기에는 거리가 먼 ‘교양’은, 힘센 기술 지식(knowledge of technology)의 도도한 진군에 밀려나고 있다. 실제로 대학의 교양 영역 커리큘럼에 이러한 기술 교양들이 즐비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교양’이란 말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곳이 있다. ‘교양’은 표준어를 규정하는 조건이 되어서 당당하게 살아 있다. 우리말 표준어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 처음 정해졌다. 당시 조선어학회는 표준어 사정(査定) 원칙을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정했었다. 그로부터 55년 뒤 1988년 정부는 ‘표준어 규정’을 개정했는데,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 사정 원칙으로 삼았다. ‘중류 사회’라는 계층 개념이 모호하다는 점이 개정의 핵심이었다.

 

표준어 사용과 관련하여 ‘교양 있는 사람들’의 모델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교양의 개념이 다양하게 파생, 변천해 간 데서 생기는 어려움이다. 실제로 ‘교양’은 지식과 학문을 닦아 인격으로 내면화된 품성의 차원이 있는가 하면, 교통 규칙을 어긴 운전자에게 벌칙으로 부과하는 일정 기간의 교육을 ‘교양’으로 부르기도 하는, 그런 차원의 교양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교양 있는’은 바로 우리가 사용해야 할 표준어의 자질에 해당하는 것임에 주목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교양 있다’는 말은 품위 있고 세련된 ‘언행’을 지칭할 때 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표준어를 일상의 언행으로 실행함으로써 ‘교양 있는 사람’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교양 있는 사람’이란 그 진경을 헤아리기가 쉽지 않다. ‘교양 있음’이 밖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데서 교양의 진정한 경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교양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진정한 교양에서 멀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속물이라 한다. 그런데 여간 숨기려 해도 교양이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말 '언행'이다. 표준어 규정에 ‘교양 있는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은 그래서 적실하다. 다른 어떤 규범 규정에 ‘교양 있는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보다도 표준어 규정이 들어가 있는 것이 맞다. 맞아떨어진다.

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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