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 특수선(특수 목적 군함) 산업의 위상이 한 단계 도약했다. 미국 주도의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넘어, 유럽·북미·남미·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 전역으로 외연을 넓히는 모양새다.
3일 외신 및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지난 1일 페루 국영 조선소 시마(SIMA)와 잠수함 공동 개발 및 건조·생산과 관련한 LOI(의향서)를 체결했다. 지난해 11월 MOU(양해각서), 지난 4월 MOA(합의서)에 이어 실질적 사업 추진을 위한 후속 조치다. 이번 협력은 테레사 메라 페루 통상관광부 장관과 하비에르 브라보 데 루에다 해군사령관 등 주요 인사들이 APEC 회의를 위해 방한한 것을 계기로 급물살을 탔다.
페루 해군은 노후 잠수함 교체 사업을 진행 중이며, HD현대중공업의 1500톤급 ‘HDS-1500’급 잠수함을 기반으로 신형 잠수함 건조를 검토 중이다. 길이 65m, 폭 7m 규모의 HDS-1500은 수심이 얕은 연안 작전에 특화된 중형 잠수함으로, 기동성과 은밀성을 동시에 갖춘 모델로 평가된다.
한화오션도 APEC을 계기로 잠수함 수출 협력을 본격화했다. 한화오션 측은 지난 1일 경주에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만나 잠수함 프로젝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한화오션은 도산안창호급(3000톤급) 잠수함의 전투체계 및 소나 시스템 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오션은 지난달 30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김민석 국무총리,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함께 거제 사업장을 찾으면서 글로벌 조선 경쟁력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은 ‘팀 코리아(Team Korea)’를 구성해 캐나다 해군의 잠수함 12척 도입 사업(CPSP·최대 60조 원 규모) 수주전에 도전 중이다. 이미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즈(TKMS)와 함께 최종 후보(숏리스트)에 올라 있다. 양사는 3000톤급 ‘장보고-Ⅲ 배치Ⅱ’를 제안한 상태다.
이와 별개로 한화오션은 폴란드 해군이 추진 중인 8조 원 규모 ‘오르카(ORKA) 프로젝트’에서도 잠수함 3척 공급을 노리고 있다. 한화오션은 “조만간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며, 빠르면 올해 내 우선협상대상자가 지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김동관 부회장이 대통령실 강훈식 비서실장이 이끄는 폴란드 특사단에 합류해 ‘오르카 세일즈’에 직접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북미·남미·유럽·아시아를 망라해 세계 각국 해군이 한국산 특수선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국내 조선 업계는 미국과의 전략적 연대를 강화하면서도 동시에 비(非)미권 시장 개척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APEC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에 ‘핵추진 잠수함 승인’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내 특수선 산업의 위상은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미 해군 함정 재건의 핵심 파트너라는 타이틀 자체가 글로벌 수주전에서 가장 강력한 트랙레코드가 된다”며 “글로벌 함정 건조 경험이 쌓일수록 미 해군의 신뢰도 높아지는 만큼, 상호 선순환 구조를 통한 수주 확대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오다경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