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최근 중앙아시아 대초원을 남북으로 종단하는 자동차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는 우리 민족의 시원과도 관련이 있는 땅이자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본향인 알타이 산맥.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10배에 해당되는 총 4200㎞를 달린 장거리 여행이었다. 도반은 중앙아시아 오프로드 여행전문가이자 나의 오랜 러시아인 친구, 세르게이 루카센코.
그는 오프로드에서의 비상 상황에 대비한 장비가 구비된 자신의 애마 ‘니산 패트롤’을 선택했다. 여정은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인 알마티에서 시작했다. 알타이산맥의 관문 도시인 우스케멘까지 꼬박 이틀을 달린 후 여행의 목적인 벨루하 산 정상을 보기 위해 카톤카라가이까지 다시 2~3일을 가야 했다.
출발 전, 시내의 마트에서 생수와 커피 그리고 초콜릿 등 비상식량을 구입했다. 경치 좋은 곳에서 차를 세우고 커피 한잔을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갖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겨보기 위해서였지만, 사실은 ‘예상치 못한 고립’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였다.
내가 차에 타자 세르게이는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드디어 출발~
시내를 벗어나 우스케멘으로 가는 A3 고속도로를 탔다. 내가 탄 차는 오프로드 주행용으로 튜닝되어 차체가 정상보다 무려 15㎝나 더 높여져 있었다. 덕분에 험로 주행에는 강인한 면모를 보였지만, 포장도로를 달릴 때는 속도와 승차감에 한계가 있었다.
초원과 마을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다가 어느덧 길가에 양파가 가득 든 자루가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예전부터 고려인들이 대규모로 양파 농사를 짓던 곳으로 유명한 친길디 마을을 지나고 있었다. 현재는 도시로 나간 고려인들을 대신하여 그들로부터 농사법을 배운 카자흐인들이 양파 농사를 이어가고 있다.
반나절쯤 달린 후 화덕에서 직접 구운 빵과 음료수를 사 먹을 수 있고 유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주변에는 가족처럼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을 먹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나요?” 그들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그들은 우스케멘에 사는 조카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4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벨루하 산을 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인데, 알타이의 관문인 우스케멘을 경유할 것이라고 말하자, “카자흐인들은 손님을 잘 대접하는 풍습이 있답니다.”면서 “우스케멘에 도착해서 전화를 주시면 연회장 주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라며 결혼식 피로연에 나를 초대했다.
우리 차가 오프로드형으로 개조된 차량이라서 시간 내에 도착하기 어렵겠지만 낯선 여행자까지 초대해 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지만 맘 한구석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한참을 더 달리자, 시야에 낮은 언덕 하나 없는 대초원이 나타났다. 단 1미터 높이의 언덕조차 없어 지평선이 보이는 대지의 색깔은 누런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오직 하늘만은 유난히 파랬다. 오후 네 시쯤 되자, 초원에는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고 다섯 시경이 되자 주변이 이미 어두워졌다. 북쪽으로 갈수록 낮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것을 체감했다.
알타이의 꿀과 차를 맛보다
알타이 지역은 꿀과 녹용(사슴 뿔) 그리고 약초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나오는 뿔·허브·꿀이 전통적으로 체력 회복과 장수 요법에 쓰였다.
한참을 달리자 길거리에 말린 생선을 걸어 놓고 파는 가게가 보였다. 카자흐스탄 최대의 호수(세계에서 5번째) 부흐타르만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뽈랸스코예 라는 호수가 마을에 잠시 차를 세워서 훈제 송어 두 마리를 사서 운전에 지친 세르게이와 나눠 먹으며 계속 차를 달려 나갔다.
다음날, 벨루하 봉을 향해 점차 고도를 높여 나가던 중, 산꼭대기를 덮고 있는 흰 눈이 원경을 이루고 노랗게 단풍 든 자작나무 숲이 중경을 이루는 속에, 듬성듬성 자리 잡은 근경의 파란색 집들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차를 세웠다.
마을에는 가축들을 위한 건초 작업이 한창이었다. 트랙터가 지름 2미터가 될 법한 둥글게 말린 건초 더미를 헛간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었다. 나는 마을 구석구석을 걸으며 예쁜 집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때 ‘니바’ 라고 하는 러시아산 짚차가 내 옆에 다가와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카자흐인이 나에게 어디서 왔다고 묻길래, 여행 온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그는 다짜고짜 나에게 ‘소서노’를 아느냐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순간 내가 멈칫하자 그는 주몽이라는 드라마를 너무 재밌게 보았다면서 소서노는 잘 있냐고 내게 재차 물어보았다.
그제서야 질문의 전후 맥락을 이해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장소를 그의 집으로 옮기면서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대답을 이어갔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이들이 한국 문화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과 알타이 지역에서는 사람보다 가축의 먹거리인 건초를 확보하는 것이 월동 준비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의 대화는 그의 부인이 내온 알타이 꿀과 뜨거운 홍차 그리고 카자흐인들의 주식인 양고기를 본 후에야 비로소 멈췄다.
올드 오스트리안 로드와 카톤카라가이
알타이 산맥에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포로들이 만든 전설의 고갯길이 있다. 올드 오스트리안 로드 라고 불리는 이 도로는 당시 병참로이자 탈출로였고, 지금은 트레커와 오프로드 여행자들이 찾는 역사적 루트로 남아 있다.
길가에는 당시 포로들이 남긴 목조 교각과 돌다리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매년 여름이면 현지인들이 추모제를 연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틀 전에 내린 눈으로 인해 도로가 통제되어 진입할 수가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차를 달린 지 약 두 시간, 고분과 암벽화를 비롯한 많은 고고학적 유적지로 유명한 베렐 마을을 지나갔다. 마을 근처 ‘왕의 계곡’이라 불리는 곳에는 적석목곽분이라는 신라 고분 형식과 매우 유사한 고분들이 분포되어 있는데, 신라 금관의 장식물과 매우 유사한 황금 유물이 출토되었다. 박물관에는 화려한 황금장식으로 멋을 낸 말들이 주인과 함께 순장되었던 발굴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었다.
벨루하 산을 카메라에 담다
알마티 출발 기준으로 5일째. 드디어 여행의 목적지인 벨루하 산(4506m)을 조망할 수 있는 카톤카라가이에 도착했다. 이곳은 고대부터 힘과 에너지의 원천이어서 전 세계의 생명은 알타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신화를 지역 주민들은 간직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이 '4대양의 중심'과 '지구의 탯줄'이 있는 곳이라며 신성시 여기고 있었다.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과 영적 체험, 혹은 완벽한 사진 촬영을 위해 벨루하 산을 방문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방문객은 만년설이 덮인 벨루하 산 정상 대신 정상을 제일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
드디어 주변이 온통 흰 눈에 덮인 마지막 고갯마루를 넘자, 눈 부신 햇살 아래의 빛나는 벨루하 가 신비로운 자태를 드러내었다. 순간 반사적으로 아니 구름이 벨루하를 언제 가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꺼내 연신 셔터를 눌렀다.
실제로 잠시 뒤 햇볕이 쨍쨍하던 하늘의 그 어디에서 구름이 몰려왔는지 벨루하 정상을 가리기 시작했다. 우리 민족의 시원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관념이 나를 이곳으로 오게 했지만 직접 본 벨루하 와 알타이의 산세는 한반도의 그것과 닮아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벨루하는 끝내 완전히 구름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짧은 순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고 나는 마치 리셋버튼을 누른 후 새롭게 로딩되는 휴대전화처럼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세상 속에서 묵묵히 살아가겠다는 겸손 모드로 재설정되어 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