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전쟁의 포화 속에 국제 유가가 널뛰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며 배럴당 유가는 임계점을 넘나들고 있고, 그 여파는 국내 민생 현장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이러한 비상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조기 추경'의 필요성을 공식화한 것은 시의적절한 결단이다. 고유가 직격탄을 맞은 서민 경제의 고통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투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이번 추경은 단순히 경기 부양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거대한 외부 충격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취약계층을 위한 '민생 보호막 추경'이 되어야 한다. 기름값 폭등으로 생산 원가 상승을 견디지 못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름값 상승은 단순히 주유소 가격표의 숫자가 바뀌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경유 가격 급등으로 인해 화물차 운송업자들은 “달릴수록 적자”라는 한탄을 쏟아내고 있다. 유가연동보조금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면서 물류망 마비라는 국가적 물류 위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택배 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들 역시 유류비 부담 증가로 실질 소득이 급감하며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 또한 시설 원예 농가와 어민들도 난방비와 면세유 가격의 폭등으로 수확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추경은 이들을 위한 에너지 바우처 확대, 유류세 감면 폭의 추가 확대, 그리고 영세 사업자 대상의 직접적인 유류 보조금 지원 등 핀셋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이 얼어붙으면 내수 침체의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추경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속도다. 외부 충격에 의한 위기 상황에서는 재정 투입의 적시성이 곧 정책의 효능감이기 때문이다. 신속한 추경으로 거대한 외부 충격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취약계층을 위한 ‘긴급 구조 신호’이자 실질적인 ‘민생 보호막’이 되어야 한다. 이미 쓰러진 뒤에 처방하는 약은 효험이 없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신속한 집행만이 경제의 기초 체력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다. 양극화가 심화되는 위기의 순간에 재정이 서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하는 이유다.
추경 논의가 나올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나랏빚’ 걱정은 이번만큼은 기우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밝혔듯, 이번 추경은 국채 발행 없이도 충분히 조달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반도체 업황 호조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이 역대급 실적을 기록하며 법인세 세수가 당초 예상을 크게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고, 주식시장 활성화에 따른 증권거래세 수입까지 가세하며 10조 원에서 최대 20조 원 규모의 '초과 세수'가 확보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확보된 초과 세수를 민생 현장에 즉각 환류시키는 것은 재정의 당연한 책무다. 미래 세대에게 빚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위기에 처한 현재의 서민들을 구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정부는 세수 추계를 정밀하게 재점검하여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민 경제의 혈맥을 뚫어주는 정교한 설계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정치권 또한 재원 조달에 대한 근거 없는 공방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안타까운 점은 민생 현장이 이토록 절박함에도 불구하고 여야 정치권의 시계는 온통 6월 3일 지방선거에만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여당과 야당은 내부 공천 갈등과 주도권 다툼, 계파 간 권력 투쟁에 매몰되어 국회에서 민생은 뒷전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선거 승리라는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눈앞의 경제 위기를 외면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명백한 직무유기다.
여야는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추경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즉시 신속하게 심의·의결하여 현장에 온기가 전달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국민이 정치에 바라는 것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내일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게 해주는 실질적인 대책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위기의 시대, 정치는 오직 '민생'이라는 본연의 가치로 증명되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