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적인 일상] 어떤 날

2026.04.20 06:00:00 15면

 

4월이 되면 어떤 날짜를 떠올리게 된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이름은 여전히 또렷하다. 우리는 그날을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날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지 못한다.

 

인간은 각자 다른 감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고,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마음에 닿는 깊이가 다르다. 상상력과 공감의 범위 역시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작은 고통에는 민감하면서도, 타인의 거대한 고통 앞에서는 쉽게 감각을 잃는다. 특히 규모가 큰 참사일수록 그렇다. 숫자가 커질수록, 그 안에 담긴 개별의 얼굴과 목소리는 오히려 흐릿해지는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늘 어떤 비슷한 지점에서 생각을 멈춘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 것인지 자신이 없다. 뉴스로 접하고, 기록을 통해 알고, 여러 해를 지나며 나름대로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당사자의 감정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어쩌면 애초에 닿을 수 없는 거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늘 조심스럽다. 이 일을 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낼 자격이 있는가 같은 생각들이 앞섰다. 충분히 알지 못하면서 말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있다. 공감한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까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얼마나 깊이 공감하고 있는가를 따지는 문제 이전에, 내가 다른 누군가와 이 일을 다루지 않는 상태가 되어가는 것이 더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감히 다가갈 수 없다는 이유로,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경계해야 할, 편한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공감은 완벽할 수 없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그 한계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떠올려 보는 것.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그래도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

 

그래서 나는 거창한 무언가 대신, 단순한 태도를 가지려 한다. 하루에 한 번, 잠깐이라도 멈춰 서서 그날을 생각해 보는 일.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을 그 하루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일.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생각한다.

 

기억한다는 말은 때로 너무 쉽게 사용된다. 그러나 기억은, 꺼내어 보지 않으면 금세 흐려진다. 그래서 의식적으로라도 그 시간을 불러와야 한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끝내 다 닿지 못하더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잊혀진다는 것과 다르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떠올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떠올림을 멈추지 않는 것.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날 하루만큼은, 조금 더 또렷하게 그날을 생각해 보려 한다. 완전히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문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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