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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관광공사 학생 홍보대사가 소개하는 관광명소·축제 ⑪ 심곡서원

 

조광조 뜻 기리고자 세운 ‘심곡서원’ 그의 청렴함 닮아

향교와 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다. 요즘으로 치면 향교는 공립학교이고 서원은 사립학교라고 할 수 있다. 두 곳 모두 제향의 기능을 겸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지난달 19일 경기도 주요관광지를 소개하는 홍보동영상 UCC 촬영을 위해 VJ와 함께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상현1동)에 있는 심곡서원(深谷書院)을 찾아갔다.

심곡서원은 정암 조광조(1482~1519년)를 주향(主享)으로 하는 서원이다. 주향은 서원에 신위를 봉안할 때 가운데에 첫 번째로 모시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 이후로 봉안하는 것은 배향이라고 한다. 조광조는 조선 중종 때의 사림파의 영수이자 개혁가로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를 못마땅해 했던 중종과 훈구파에 의해 기묘사화로 유배됐다가 죽음을 당했다.

전체적인 구조는 뒤편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언덕모양이며, ‘전학후묘’(前學後廟, 앞쪽에 공부하는 곳 뒤쪽에 사당 배치) 형태다. 성현을 모시는 사당을 더욱 높이려는 뜻이 담긴 구조로 향교·서원 배치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다. 신성한 지역에 왔음을 알리는 홍살문(궁이나 묘, 능 따위 앞에 세우던 붉은 칠을 한 문)을 지나 외삼문

을 통과하면 앞에는 ‘일소당(日昭堂)’이 있고, 양 옆엔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서재가 보인다.

‘일소당’이라는 이름은 조광조가 사약을 받고 죽기 전 남긴 시 구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고, 나라를 내 집처럼 근심하였네. 해가 이 땅을 굽어보니, 나의 붉은 충정을 비추리.”(정암 조광조의 절명시) 마지막 순간까지 우국충정 했던 그의 뜻을 기리고 이어가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일소당을 지나 오른편에 있는 건물이 ‘장서각’이다. 이 장서각에선 67종 486책을 소장했으나, 1985년 도난사건이 발생해 현재는 ‘정암집’‘조선사’ 등만 전해진다. 일소당 정면에는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이 들어서 있다. 외삼문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다. 경내에는 조광조가 직접 심은 것으로 알려진 수

령 500여년의 느티나무가 남아 있다. 1972년 5월 4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됐으며, 올해 1월 28일엔 문화재청으로부터 국가유형 문화재인 사적 제530호로 지정됐다.

서원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조광조 선생의 묘소’가 나온다. 가는 길에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하마비 앞을 지나는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야 한다. 명장터로 알려진 묘소 입구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고 조그만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조광조의 묘소가 나온다. 이렇게 한 바퀴를 다 둘러보고 나면 조광조 선생의 발자취와 그 사상을 한번쯤 더 생각해볼 수 있다. 때문에 무작정 가는 것보다 조광조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리고 서원 구조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고 간다면 더욱 알차게 둘러볼 수 있을 듯하다.

경기관광 학생홍보대사

조형준(홍천고)·조윤진(풍덕고)

경기교육신문 webmaster@edu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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