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간 아래 사람
/장석주
난간에 서서 아래를 볼 때
당신은 난간 아래에서 운다.
거리엔 피 없는 자들이 활보하고
아아, 이럴 수는 없지!
당신은 연옥에서 깃발로 펄럭인다.
펄럭이는 것들은 울음,
손톱은 비통(悲痛)에서 돋은 신체다.
당신이 난간을 붙든 채 서 있고
나는 난간 아래 사람,
나는 머리칼을 짧게 자르고
당신은 나를 모른다.
우울은 슬픔의 저지대(低地帶)다.
푸른 벽에 못 박힌 달!
꿈길 밖에 길이 없어 바다 속으로
침수한다면,
물속에서 누가 울고 있습니까?
당신도 무섭습니까?
절제된 감각으로 슬픔을 보여주는 시이다. 화자는 슬프지만 감정을 추스르고 난간에 기대어 있다. ‘거리엔 피 없는 자들이 활보’하므로 삭막하다. ‘당신은 연옥에서 깃발로 펄럭’이니 다급하고 애통하다. ‘손톱’의 이미지에는 증오와 분노와 여러 감정이 섞여 있다. ‘슬픔의 저지대’와 ‘먼 곳의 빈 방’이라는 표현에서 우울과 공허가 감지된다. 이 시는 난간 아래의 슬픔을 건져 올려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주변을 살펴보면 불안하고 위태로운 난간이 산재한다. 심정적으로 난간을 의식하는 것은 두 말을 할 여지가 없다. 누구나 난간이었거나 난간이거나 난간이 될 수 있다. 위기의식에 대한 이해는 소통의 중요한 가치이다. 시문학이라는 장르가 바로 ‘슬픔의 저지대’이며 ‘먼 곳의 빈 방’을 비유적으로 대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박수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