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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묵의 미디어깨기] ‘기레기’의 사회사

 

‘기레기’란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다. 당연히 기자들을 경멸하는 모욕적인 표현이다. 위키백과에서는 “허위 사실과 과장된 부풀린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이나 현상”을 지칭하는 말로 규정한다.

 

얼마 전 대법원은 ‘기레기’란 말을 들을만한 기사를 쓴 기자에게 ‘기레기’라고 하는 것은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기레기’라는 말은 2010년 무렵 MB정권이 언론을 장악한 이후 등장했고,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보도 이후다. 과거에도 사이비기자, 악덕기자, 어용기자와 같이 기자직을 비하하는 말은 있었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기자라는 직업이 본래 그런 것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100년이 훌쩍 넘은 한국 언론의 역사는 한마디로 ‘영혼이 있는’ 기자가 반복적으로 추방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구한말 지사(선비) 언론인과 식민지시절 민족주의 계열 기자들은 일제가 축출했다. 해방 직후 남한을 접수한 미군정은 40여 곳의 좌익계열의 언론사와 수많은 ‘반미’ 언론인을 ‘대학살’했다. 박정희는 쿠데타 이후 진보계열 《민족일보》 발행인 조용수를 처형했고, 10월 유신 직전 ‘프레스카드제’를 도입하여 2,287명의 기자를 도태시켰다. 이후 신문들은 무기력과 타락을 넘어 도둑(정권과 재벌)을 위한 망보기꾼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후에도 언론인 추방은 계속된다. 1975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사주들은 박정희의 ‘사주’를 받아 자유언론실천 투쟁을 하던 기자 145명(동아 113명, 조선 32명)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1980년 전두환은 쿠데타로 집권한 후 933명의 언론인을 ‘자율정화’ 명분으로 해직시켰고, 정기간행물 172종을 폐간시켰다.

 

이렇게 한국언론에서 지사, 민족, 좌파, 진보, 자유와 같은 DNA가 제거된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조작식품’처럼 살아남은 것이 ‘기레기’들이다. 고 리영희 선생은 정론직필에 앞장서는 ‘홍경래 기자’가 추방된 이후 살아남은 자들을 ‘이완용 기자’라고 칭했다. 언론계에 친일부역자 청산이 이루어진 바 없고, 그들이 지금까지 언론 권력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이완용기자’는 더없이 적실한 표현이다. ‘토착 왜구’와도 잘 어울린다.

 

일제강점기 이후 기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동안 언론사 사주들은 조선총독부, 미군정, 친일파, 자유당, 군사정권과 ‘온몸으로’ 야합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소위 조중동과 같은 수구신문은 국가권력을 참칭하며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권력의 권력’이 되었다. 코로나19 정국에서 드러나듯 현재 한국의 수구언론은 재벌과 검찰, 관료와 같은 기득권세력의 전위대이고, ‘기레기’는 그 소모품이다. 그럼에도 ‘기레기’들은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기레기 저널리즘 시대’를 종식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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