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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스타의 스타트랙] 접속(接續)

 

피시 통신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이텔과 천리안을 필두로 나우누리, 유니텔 같은 업체들이 가담하며 1세대 온라인 문화의 지평을 열었다. 고등학생의 때를 갓 벗어던지고, 서서히 대학이란 곳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갈 무렵, 내게 피시 통신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각종 동호회부터 채팅방까지 매일 온라인에 접속하는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리고는 이내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각 피시 통신 서비스 안에는 음악 관련 동호회들이 많이 있었다. 록, 재즈, 힙합,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소통의 창구였다. 사진 한 장을 공유하려면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와야 했을 정도로 극악의 통신 속도였지만, 신세계를 접하는 데 있어 그런 것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같은 관심사의 사람들이 풀어놓는 이야기들에 늘 귀를 기울였고, 나 역시 정보를 공유하며 그 피드백을 즐겼다. 모든 것이 공유되는 지금과는 달리, 각자의 보물을 조금씩 꺼내 놓으며 주목을 받는 재미 역시 한몫했다.
 
종종 오프라인 모임도 하게 됐는데, 헤비메탈 공연 감상회 같은 취지의 모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음악 감상하기 좋은 바를 빌려 서로 가져온 희귀 음반을 들으며 이야기하는 자리가 훨씬 많았다. 인원수대로 녹음해온 카세트테이프를 돌려 공유하는 사람도 있었고, 해외 잡지를 복사해 나눠주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로 열정적인 자리였다. 모임의 상당수가 음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음에도, 그 지식과 열정은 대단했고, 음악을 이야기하는 순간이면 모두 눈에서 빛이 났다. 자리의 끝은 대부분 술과 음악에 취한 사람들끼리 팬심 어린 자존심을 걸고 다투는 장면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런 청춘의 순수한 시간이 유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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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국이 장기화되다 보니, 사람을 편하게 만났던 게 언제였나 싶다.
 
어디로 멀리 떠나는 상황은 아니지만, 진동하던 여름 냄새가 가시고 쌀쌀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판데믹 이후 냉동해뒀던 관계들을 하나씩 꺼내어 해동하고 싶어 진다. 온라인 네트워크가 발달해 굳이 만나지 않아도 대부분의 지인 근황은 알 수 있다지만, 역시 모자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조심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몹시 야속할 따름이다.

 

늦은 밤 아쉬운 마음에 휴대폰의 주소록을 스크롤했다.


이 시간에 자지 않고 나와 비슷한 냄새가 나는 사람들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음악인으로 포커스가 맞춰졌다. 여전히 로큰롤을 울부짖으며 고군분투하고 있는 동갑내기 로큰롤 전사들부터, 밴드 후배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선배들의 이름이 하나둘 눈에 띈다. 불현듯 그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져, 전화를 걸어 근황 이야기나 신변잡기로 느슨하게 통화를 시작했다. 

 

수다를 떨다 보니 대화는 어느덧 음악 이야기로 길게 흐르고 있었다. 
같은 꿈을 안고 같은 시간을 걸어온 현직 음악인과 나눴던 음악 이야기는, 내 가슴에 익숙한 자극으로 울려 퍼졌다. 책임지고 감당해야 하는 현실에서 그리고 성인들의 대화 클리셰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꼈던 것일까, 이런 대화의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노스탤지어에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다시 스무 살 록키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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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또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잠시 생각해 본다.
마치 지난날의 그 음악 감상회처럼, 그들과의 대화가 꽤 즐거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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