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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32. 갈현동과 경충(京忠)국도

 

성남시 갈현동(葛峴洞)은 고개가 가파르기 때문에 말(馬)조차 목마르게(渴) 넘는다는 갈마현리(渴馬峴里)로 부르다가 갈현리(渴峴里)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는데, 풍수지리학상으로는 갈마음수혈(渴馬飮水穴), 즉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신다고 하는 천하명당이라는 마을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이 마을 동쪽에서 광주시 삼리(森里=삼동)로 넘어가는 갈마치(渴馬峙) 고개에 산 도적인 불한당 떼들이 들끓는 공포의 고개였다는 설도 있다. 굳이 이곳 뿐 아니라 전국각지에는 가난하던 시절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 무수히 많다.
 


조선왕조실록에는 加乙馬峴, 加乙麿峴, 加乙麻峴(가을마현) 등으로 기록돼 있다. 세종실록의 기록인데 한자로 쓰기는 네 글자이지만 발음은 갈마현 세 글자로 발음한다. 옛날에 우리말을 한자로 빌려 표시할 때 반절(半切)이라 해서 앞글자와 뒷글자를 합성해 하나의 발음으로 표시했다. ‘加(가)+乙(ㄹ)=갈’이다.
 
세종이 상왕(태종)과 함께 1422년과 1427년에 군사훈련을 목적으로 사냥을 왔었다. 세종 9년(1427) 10월 4일 임금이 양녕대군 이제(李禔)와 효령대군 이보(李補)와 함께 매사냥을 하고, 드디어 갈마재[加乙麻峴] 남쪽에서 몰이하고 길에서 낮참했다. 이제가 이천으로 돌아가니 술과 사슴을 하사했다. 저녁에 탄천교(炭川郊)에서 유숙했다. 양녕대군은 세자에서 폐위된 후 이천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중이었는데 세종과 함께 사냥에 참여한 것이었다. 세종은 그 후에도 1431년과 1442년에 이 지역에서 사냥했다. 갈마재에서부터 짐승을 몰이해 영장산(靈長山)을 양편에서 휘감고 돌아 문현산(門懸山=문형산) 사장(射場)으로 이어지는 천혜의 사냥터이며 군사훈련장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돌마면 갈현리(渴峴里)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변경 때에 칡이 많은 곳이라는 뜻으로 칡 갈(葛)자로 써서 갈현리(葛峴里)로 됐다.


1973년 7월 1일에 성남시로 승격하면서 갈현동(葛峴洞)으로 바뀌었고 1975년 돌마출장소(突馬出張所)에 편입됐다가 1989년 중원구(中院區)에 편입됐다. 옛날에 옹기점이 있었다고 전해오는 독점말이 있었고 새터말, 갈마치, 이배재, 산박골, 능말랭이, 성남시영생관리사업소가 있는 법정동이다.
 
그런데 현재 대원터널 위로 이름도 알 수 없는 절터가 있는데, 꽤 규모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많아서 절을 폐사(廢寺)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는데, 빈대가 진짜 빈대인지 더불어 살려는 사람들을 우회적으로 부른 이름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큰 주춧돌이 남아 있고 지붕에 얹는 치미가 발견되기도 했다.

 

 
갈마치길이 원래 옛길이었으나 1970년대 초에 3번 국도가 개통되면서 고개 밑으로 새로운 길이 생겼다. 서울에서 충주를 연결하기에 경충국도(京忠國道)라고도 하는데, 성남시 승격 전인 1971년에 광주대단지와 경안을 연결하는 도로가 확장됐다. 1978년 4월 28일에는 이천 구간 확장공사 중 발파하면서 직경 50㎝의 돌이 시외버스 유리창으로 날아들어 여러 명이 상해를 입는 사고가 발생했고, 1979년 5월 21일 김천까지의 구간이 개통돼 박정희 대통령이 첫 시승을 했다. 경충산업도로라고 불리기도 하다가 지금은 장호원까지의 구간을 경충대로라고 부른다. 한편 경충국도의 상습 체증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 신설된 국도인 성남이천대로가 몇 년전 개통됐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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