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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스타의 스타트랙] 2021년의 끝

 

코로나 시국 이전에 일본 오사카로 연말 여행을 다녀왔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실타래처럼 꼬여있던 생각도 좀 정리를 할 겸 떠난 여행이었다. 사실 해결보다는 외면의 의미가 더 가까웠지만, 나이와 함께 늘어가는 어깨의 짐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고 싶은 상황에서, 여행은 꽤 도움이 됐다. 옷가지를 넣은 가벼운 짐과 함께 카메라를 하나 둘러메고 그렇게 간사이 공항행 비행기에 올랐다.
 
나는 과거 MBC 무한도전 프로레슬링 특집을 준비하며 알게 된 격기 계통 사람들의 인연으로, 일본에 있는 그쪽 업계의 사람들을 제법 많이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일본과 왕래가 괜찮았던 시절에는, 서로 오가며 종종 만남을 가졌다. 이 여행에서도 그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같이 운동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러던 중 매우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프로레슬링 경기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 경기를 보러 간 것이었다. 

 

오사카 변두리의 폐공장을 극장으로 개조한 작은 경기장에서의 시합이었는데, 늦은 오후에 시작해 크고 작은 시합들로 이어지다가, 12월 31일에서 새해로 넘어가는 순간, 링 위의 선수와 관객들 모두 같이 카운트다운을 하며 축하하는 이벤트였다. 신 일본 프로레슬링이나 전 일본 프로레슬링 등의 메이저 단체가 아닌 작은 로컬 인디 단체들의 경기였지만, 기대 이상으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관람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고사 직전인 프로레슬링이라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에 지금도 진지하게 열광하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그런 문화의 저변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경기를 보러 고베에서 온 관객 중 한 명이 무한도전 프로레슬링 특집에서 나를 봤다며 반겨주는 일도 있었는데, 이런 마니아들 세계의 정보력에 다시 한번 놀라기도 했다. 
 
프로레슬링의 매력은 그들이 몸을 던져 보여주는 드라마에 있다. 어릴 적엔 프로레슬러들이 보여주는 경기 속 캐릭터에 몰입해 환상을 가지고 즐겼다면, 이제는 그들의 훈련과 생활을 어느 정도 경험해 봤기에, 순간순간의 기술이 보여주는 고통을 같이 느끼며 감정이 이입되어 빠져들게 된다. 기술과 연기 사이의 절묘한 줄타기 속에 이뤄지는 링 위의 모습은 언제 봐도 통쾌하면서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2008년에 개봉한 미키 루크(Mickey Rourke) 주연의 '더 레슬러(The Wrestler)'를 보면 프로레슬러의 삶에 대해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를 하고 있는데, 여러 관점에서 현실을 투영해 보게 된다. 무대 위에서의 아찔함과 짜릿함 그리고 화려한 모습 뒤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 관한 이야기라던가, 그로 인한 부상과 생활고 등 반대급부의 대가가 경기장 밖의 레슬러에게 고스란히 옮겨지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극소수 슈퍼스타급의 프로레슬러들을 제외하곤 수입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 실제로 오사카에서의 경기를 뛰었던 선수들과도 이야기해 봐도 다른 일과 병행하며 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요즘 시대에 멀티잡을 갖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들이 그렇게까지 해가며 링 위에 서는 이유는 바로 꿈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영화에서는 ‘왜 링 위에 오르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프로레슬링에 대한 애정과 열정 그리고 자신의 시합에 박수갈채와 야유를 보내주는 관객들을 위한 마음에 대한 감사로 묘사한다. 그리고 현실감 없는 철부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런 감사의 마음을 안고 자신의 꿈을 위하여 다시 또 링 위에 오르는 레슬러의 모습으로 마무리한다.


오사카에서의 연말 카운트다운 프로레슬링 경기는 영화 '더 레슬러'만큼이나 묵직한 울림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라는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서 다시 한번 뒤집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결국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가?’라는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지난 2년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을 수많은 직업군이 있다. 특히 사람들 앞에 서는, 사람들과 함께해야만 빛이 나는 사람들은 더욱더 절실했을 것이다.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래도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조금 숨통이 트이나 싶다. 


내년 한 해는 많은 열정이 움츠렸던 날개를 펼치며, 꿈에 닿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희망찬 기대가 가득한 카운트다운으로 2022년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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