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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준의 경기여지승람(京畿輿地勝覽)] 35. 이무술마을 이매동(二梅洞)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은 이매동사무소와 탄천 사이에 있는 들판을 ‘이무술들’이라 했는데, 이곳의 지세가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기록에는 ‘임의술’, ‘이매동’ 또는 ‘임의곡(任意谷)’으로 기록되어 있다. 영창대군 위토 관련 문서에는 ‘임의실(任宜室)’이라고 기록하였다.
 
이매동에는 흥미 있는 지명이 많이 남아 있는데, 천지개벽 때 종지만큼 남았다는 산으로 물방앗거리 동쪽에 있는 종지봉, 병자호란 패전 후 말 떼가 나타났다는 삼천병마골, 큰 부자가 살다가 손님들이 많이 오는게 귀찮아서 물방앗거리와 야탑동과 중탑 사이의 산허리를 끊었더니 손님도 오지 않고 부자도 망했다는 전설이 있는 헤매기골, 웇 오를 때 마시면 효험이 있다는 옻우물 등이 있다.
 


이매동에는 마을의 번영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온다.

 

300여 년 전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숯내를 막은 보에서 천렵을 했는데, 아름드리 큰 고기를 잡아 먹었다. 그날 밤 사람들은 같은 꿈을 꾸었는데, 그 고기가 "나는 천년의 도를 닦아 승천할 때를 기다리가 억울하게 죽었으니 저주할 것이다" 하였다. 두려워진 마을 사람들은 이무기를 위해 위령제를 올렸더니 한 마리의 용이 불을 뿜으며 승천하면서 토하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런 후 다시 꿈을 꾸었는데 위령제 덕분에 승천하게 되었으니, 그 보답으로 먹고사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도록 할 것이나, 300년 동안에 큰 인물은 나지 못할 것이고, 그 이후부터는 큰 인물이 많이 나오게 할 것이라 하고는 사라졌다. 다음 날 위령제를 지냈던 장소에 갔더니 매화나무 두 그루가 솟아 있어 정성껏 가꾸고 마을 이름도 이매(二梅)마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무술마을 출신으로 박승직이 있다.

 

보부상 출신인 박승직은 ‘박가분(朴家粉)’이라는 화장품을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그는 1918년 종로4가 배오개 시장에서 포목점을 하다가 ‘박가분제조본포’라는 업체를 차리고 재래식 화장 가루를 현대식 상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박가분은 50전의 싼 가격과 향이 첨가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1930년대 들어 납중독 문제가 불거지면서 문을 닫아야 했다.

 

 

1933년엔 일본인이 설립한 소화기린맥주회사에 주주로 참여함으로써, 해방 후 아들 박두병이 이를 인수하여 동양맥주를 설립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박승직상점을 두산상회로 재개업하여 두산그룹의 여명기를 열었다. 안타깝게도 박승직은 부자가 된 후로 친일의 길을 걸어 친일파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이매동에는 이무술 집터 다지는 소리가 전승돼 오고 있는데, 성남시 향토문화재 제15호로 전승되고 있다.

 

 

마을의 안녕과 편안한 집터를 다지는 노동요로서 주민들의 품앗이와 상부상조의 미풍양속을 이어가는 민속놀이이다. 이매동에는 저수지가 있어서 농업시대에는 마을의 논밭에 물을 공급하던 젖줄이었다가 분당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매립되었고, 그 자리에 청소년들이 꿈을 이루어가는 학교가 들어섰다. 송림고등학교 운동장이 저수지였다.
 

[ 경기신문 = 김대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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