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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객원 논설위원>

독배(毒盃) 또는 죽음의 잔은 중대한 범죄자 즉 모반, 반란, 사회질서 전복 등의 죄를 지은 사람에게 권력자 또는 법관이 내린 형벌이었다. 잔에 든 독약을 마시고 살아난 사람은 없다. 따라서 그것은 사형 집행의 한 수단이었다. 기존의 법과 질서에 의해 사형이 선고된 후 독배를 들고 세상을 떠난 사람은 그 법에 의해서 오랜 세월 동안 죄인으로 단죄되기도 하고, 반대로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영웅이나 그 이상의 존재로 추앙받기도 한다.

희랍의 철학자요 인류의 스승 중 한 사람인 소크라테스는 기원 전 399년에 독배를 마시고 숨졌다. 고소장은 그가 터무니없는 것을 가르치고 부질없는 짓을 선동했다고 규탄했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나는 다른 사람을 가르친 적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따랐다”고 진술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스승의 이 같은 담론을 플라톤이 정리한 명저다. 법은 무조건 준수해야 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법 위에 있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독배를 받은 소크라테스는 인류의 사상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 정치풍토의 쇄신을 위해 “죽음의 길을 간다”는 말을 남기고 제3의 길을 걷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가 3월 27일 밤 서울 충정로의 허름한 한식집에서 기자들과 만나 막걸리를 들이키며 “각오는 했지만 솔직히 참 힘들다”고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사람들이 으레 덕담으로 하는 건배사 대신 “죽음의 잔!”이라고 외치기도 했다. 술자리는 썰렁했지만 비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다.

죽음의 잔은 사람의 육신을 끝장내는 무서운 물체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와 정도를 걷는 사람의 영혼을 되살리는 기사회생의 묘약이 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과의 최후의 만찬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이는 내 몸이요 피라면서 이를 받아먹고 받아 마시게 한 후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고 언명했다. 그러나 신이면서 인간인 예수는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을 통해 부활했다. 죽음은 삶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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