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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시민은 송사(訟事)에 휘말리면 전쟁을 하는 군인들처럼 사활을 걸고 대결하고, 변호사를 살 수 없는 가난한 시민은 국선 변호인의 처분만 기다리며 초조한 심정으로 재판에 임한다. 그리하여 재판에서 이긴 사람은 환호하고 진 사람은 불편한 마음으로 불이익을 감수하거나 항소한다. 병법(兵法)의 대가 손자(孫子)가 “이기고 지는 것은 싸우는 사람에게 흔히 있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보통 시민은 송사를 한가한 게임이 아니라 인간관계와 삶의 근저까지 흔드는 위험한 싸움으로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송에서 지고도 재판장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낸 시민이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즉 얼마 전 채무관계로 소송을 당해 패소한 이모(65)씨가 재판을 담당한 부산지방법원 민사8부에 보낸 편지에서 “인생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가정사 문제(대여금)로 피소되어…돈을 갚아주란 주문에 억울함이 있지만…저희 같은 서민들은 한없이 든든하며 정말 존경스럽습니다”라고 썼다.

이씨의 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는 “원고 부인과 피고 부인 간에 발생한 금전관계로 제가 차용증을 대신 써준 것이 엄청난 변화를 자초했습니다”라고 사건의 발생 경위를 설명한 후 “그동안 많은 서면자료와 출석답변을 할 때마다 짜증 한번 내지 않고 조목조목 말하고 마치 본인들 입장인 것처럼 하나하나 경청하면서 냉정한 판단을 내린 윤근수 재판장님과 장윤선 판사님, 최욱진 판사님에게 존경심을 보냅니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이어 “돈을 갚아주란 주문에 억울함이 있으나 수용합니다”고 말했다.

일류 전문가들 사이의 경쟁 또는 대결세계에서는 승부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선전(善戰)이 극찬의 대상이 되고, 원고와 피고가 다투는 재판에서도 합리적인 판결을 하는 재판부가 원고와 피고로부터 동시에 존경을 받는 경우가 가끔 있다. 프로페셔널의 진수(眞髓)는 여기에 있다. 대법원은 법원 소식지인 월간 〈법원사람들〉 5월호의 ‘칭찬합시다’라는 란에 이씨의 편지를 요약해 실었다.

이태호<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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