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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국민참여 재판제도 성공 정착을 바라며

일반국민이 배심원 참여 유·무죄의견 판사에 개진
전문성 결여로 폐단 우려 제도보완·세칙정비해야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지난 4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우리나라 형사재판 체계에 중대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이 법률은 일부 중범죄 사건에 관한 형사재판에 일반 국민을 배심원으로 참여하게 하는 제도로서,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어 5년간의 시범운영기간을 거친 후 2013년 확대실시 여부가 결정된다.

연혁적으로 볼 때 일반국민이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방식은 크게 영미식의 배심제와 독일식의 참심제가 있다. 배심제는 다수의 배심원이 유·무죄만을 결정하고 법관은 유죄의 경우 형량을 결정하는 제도이고, 참심제는 소수의 참심원이 법관과 함께 합의체를 구성하여 유·무죄 및 형량을 결정하는 제도이다. 일본의 재판원 제도가 독일식 참심제에 가까운 것이라면, 우리나라가 이번에 도입하는 국민 참여 재판제도는 영미식 배심제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제도는 형식적으로만 영미식 배심제를 참조했을 뿐, 실질적으로는 그와 상당한 차이를 두고 있다. 우선 배심원단이 직접 유·무죄를 결정하지는 않고, 단지 유·무죄의 평의 결과와 양형에 관한 의견을 판사에게 제출하며, 배심원단의 의견은 판사에 대하여 권고적·참고적 효력만을 갖는다는 점이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따라서 판사는 영미식 배심제와는 달리 배심원단의 평의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그와 다른 결과를 선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배심제는 이를 수백 년간 시행해 오고 있는 미국에서조차 그 폐단이 지적되고 있는 제도이다. 그래서 그 폐단으로 지적되는 점에 관한 충분한 사전 검토와 구체적인 보완책을 마련하지 아니한 채 섣불리 배심제를 도입하는 것이 또 다른 문제점을 야기하지는 않을지 자못 걱정스럽다. 남의 말(馬)이 좋아 보여 덥석 갈아타고 보니 오히려 병든 말이라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하겠기 때문이다.

미국 배심제의 단점으로 제일 많이 지적되는 점은 배심원들의 자질 문제이다. 재판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시간에 쫓기거나 조직에 매여있는 고학력의 전문직 종사자나 대기업 사원들은 자연히 배심원을 기피하게 되고, 결국 배심원이 되는 사람들은 주로 대체노동이 가능한 영세 자영업자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고도의 전문성과 도덕성, 공정성의 토대 위에서 구축되어야 하는 재판제도가 적어도 전문성의 측면에서 크게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또 배심원들이 법률 비전문가로서 지식 수준이 낮을 경우 일부 영악한 변호사들은 사건의 실제를 찾기보다는 인종 차별 등의 부수적 문제를 지나치게 부각시켜 배심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쪽으로 재판의 방향을 호도하기도 한다. 그럴 경우 지엽말단적인 문제로 인해 전혀 엉뚱한 평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처럼 배심제는 꼭 법률 논리만이 아니라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든 배심원을 설득하는 것이 관건이므로, 그 방면에 출중한 능력을 가진 변호사의 경우 선임료가 천문학적으로 올라가게 되고, 결국 그러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느냐 하는 피고인의 경제적 능력의 유무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혈연, 학연, 지연 등으로 끈끈하게 얽혀 있고, 또 다른 나라보다 이 점을 중시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배심원들을 아무리 무작위로 선발한다고 해도, 그 지역에 거주하는 배심원들이 과연 이러한 요소들을 무시하고 공평무사한 평결을 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또 국선변호제를 확대 실시하여 무자력자의 변호를 위해 힘쓴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느 정도의 보완책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이다.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을 정도로 국선변호를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보수의 인상이 불가피한데, 이는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현행 재판제도의 국민적 불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폐단을 없애려고 도입한 국민 참여 재판제도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러한 폐단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먼저 공평무사한 배심원을 선정할 수 있는 제도의 보완과 시행 세칙의 정비가 필요하겠고, 다음으로 국민들의 법의식 고양과 적극적인 참여의식의 제고가 요구된다 하겠다. 기왕지사 도입한 제도이니 만큼 그 폐단으로 지목되는 점은 슬기롭게 보완 극복하고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국민과 사법부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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