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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25>-석철주의 예술세계

 

산수 비경에 세상사를 녹이다…

잡지 ‘미술과 비평’의 편집주간으로 있는 필자는 일 년 전에 ‘새로운 한국화의 가능성을 연 작가들’이라는 테마로 세 명의 유망 작가들을 추천·기획한 적이 있었다. 전통 한국화를 오늘날 우리의 입맛에 맞게 현대화시키면서도 서양화와는 그 특성과 느낌이 확연히 다른 작가의 작품을 선정하였다.

 

활동하는 작가들은 많지만 그 기준에 부합할 만한 작가는 많지 않다는 것에 새삼 놀랐었다. 우리의 정서를 안고 현대미술에 부응하는 작품 활동을 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에 선정된 작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석철주는 원래 전통 한국화를 지속적으로 해왔던 작가로서 예전부터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 왔다.

 

그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인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테마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변화시켰을 무렵, 그의 작품성이 필자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던 것 같다. 캔버스에 서양적인 재료들을 사용하면서도 우리의 정서가 흐르는 작품성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몽유도원도〉는 당시 왕족이었던 안평대군이 어느 날 꿈꾼 장면을 안견에게 그려달라고 요청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성삼문, 신숙주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찬문을 써서 그 격을 더욱 높였다. 산봉우리가 중첩되고 수직으로 솟은 형세는 산수화의 독특함을 잘 표현하였고, 동양의 정서를 심도 있게 담은 조선시대 대표작품이다. 아쉬운 점은 현재 이 작품이 국내에 있지 않고 일본의 한 대학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견의 작품과는 달리 또 다른 맛을 창출해 낸 석철주의 <신몽유도원도>는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이 낳은 현대 산수화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독특한 분위기의 웅장한 산수가 펼쳐지는 그의 작품은 비록 서양적인 재료를 사용했을지라도 전통 산수화와 같은 감성을 느끼게 한다.

 

순간적인 감성과 번득이는 영감이 없이는 표현될 수 없을 것 같은 <신몽유도원도>의 높은 산과 깊은 계곡에서는 마치 구름 속에서 나타난 신선들이 한가하게 청담(淸談)함을 즐길 것만 같다. 또한 독특한 색감과 형상 그리고 상서로운 기운이 산악 전체를 휘감은 듯하여 무릉도원의 절정처럼 보인다.

 

작품 속의 산수 비경은 모든 세상의 것들이 한번 정도 여기에 담겨졌다가 조용히 융해될 듯하며, 세상사와 인간의 욕심 그리고 모든 고난과 인생 역정을 녹이는 용광로와도 같다.

이처럼 석철주의 <신몽유도원도>는 아무리 힘든 삶의 고통과 진절머리처지는 아픔일지라도 거대한 우주에 비하면 티끌만큼도 되지 않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갈수록 메말라 가는 사람들의 강퍅함과 독선 및 악행도 깊고 험한 준령들 앞에선 안개 사라지듯 할 것이다.

 

수많은 암벽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가파른 산을 이루고, 수많은 산들이 모이고 모여 조물주의 창조의 솜씨와 성스러움을 느끼게 하듯이 산과 물들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발버둥치는 세상사란 어찌 생각하면 하루아침의 이슬처럼 덧없는 게 아니겠는가. 이를 악물고 아등바등 살아간들 한 순간의 꿈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인생을 헛되다고 했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뜬 구름 같고 귓가를 스치는 찬바람처럼 맴돌다 가는 게 인생이라 할 것이다. 석철주의 〈신몽유도원도〉에는 이 같은 인생의 애절함과 무상함이 배어 있다.

그의 달 항아리 형태 속에 그려진 포도와 대와 그리고 산수 그림 등은 〈몽유도원도〉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는 작품이라 하겠다. 한국적인 자연 취향을 모티브로 하는 작가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일련의 달 항아리 시리즈는 나름대로 정체성과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의 삶의 향수를 고스란히 담아온 달은 시와 가요는 물론이고 도자기 예술과 그림 등에서도 주로 다루어진 소재라 하겠다.

석철주는 이러한 달 항아리를 통해서 마치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처럼 사람과 자연의 친화를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달 속에 곧고 푸른 대나무의 참모습을 담기도 하고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의 투박한 노래처럼 무언가 세상사에서 지켜야 하고 꿋꿋해야 할 것들을 우리들에게 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두움 속에서 빛을 발하는 달은 세상의 힘든 일들을 이겨내는 희망을 담은 상징적인 존재이다. 석철주의 달 항아리가 있는 그림은 현대인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각박한 심성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작업실에서 작가와 차를 마시며 바라본 창밖의 예사롭지 않은 자연 경관은 마치 그가 그리는 신몽유도원도처럼 풍요롭게 느껴졌다. 자연을 벗 삼아 자연의 공기를 마셔가며 산수 자연을 그리는 석철주의 작업실 여기저기에는 그의 작가적 끼가 발동됐을 법한 흔적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조선 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나 달 항아리 혹은 백자 등을 소재로 한 그의 예술 작품들이 먼 미래까지 여전히 숨을 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힘들게 그림 공부를 하고 학비가 없어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면서도 그림에 남다른 애착을 가져 온 그가 대단한 의지를 지닌 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흔들림 없이 가장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그의 당당한 자세와 기개가 긍정적으로 생각된다.

그의 생활일기 시리즈는 앞으로도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향수(鄕愁)를 새롭고 또 새롭게 자극할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투영되는 〈신몽유도원도〉처럼 우리의 체취가 묻어나는 그의 그림들은 우리들의 마음에 변함없이 자리하게 될 것이다. ■ 글= 장준석(미술평론가)

<약력> SUK, CHUL JOO
1950 서울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과 졸업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개인전

개인전 15회 (학고재,금산갤러리,인화랑,박영덕화랑,동산방외 )

수상 경력

1997 제6회 한국 미술작가상 수상

1990 제9회 미술기자상 수상

1979~81 중앙미술대전 연3회 특선

단체전 &초대전

2007 놀이와 장엄, 두번째 ‘응시-나를 보다’(모란미술관,경기도)

‘호흡’전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서울)

2006 온고이지신-잃어버린 퍼즐찾기 (대전시립미술관,서울)

‘고요의 숲’전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항해일지’전 (영은미술관, 경기도 광주)

2004~06 제4~6회 한국현대미술제(예술의전당 미술관, 서울)

2005 취리히 아트페어 (취리히아트센타, 스위스 취리히)

제5기 영은미술관 레지던스 입주작가전(영은미술관, 경기도 광주)

2002 아시아 세기를 열며 PART -II 한국화의 현재(카소갤러리. 일본 오사카)

기운생동전 (학고재, 서울)

2001 미술의 시작 III - “현대미술 속으로 들어가자”전 (성곡미술관, 서울)

한국미술2001: 회화의 복권전(국립현대미술관)

2000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인간의 숲, 회화의 숲’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1999 1999 브뤼셀아트페어 1999, (브뤼셀센타홀, 브뤼셀 벨지움)

중앙미술대전 “역대수상작가 초대전”(호암갤러리, 서울)

1997 21세기 한국미술의 표상전(예술의 전당미술관,서울)

1996 도시와 미술전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1995 전통과 오늘의 작품 (선재미술관, 경주)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 동연회 명예회원, 전 영은미술관 입주작가, 가나장흥입주작가

추계예술대학교 미술학부 동양화전공 주임교수

<주소 :서울시 마포구 구수동 79-5 tel; 02)3272-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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