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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30>-민경갑의 예술세계

육체의 병마도 꺾지 못한… 西山의 열정

 

 

오늘날 서양의 문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는 미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림 그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서양의 미술에서 해답이라도 찾으려는 듯 기웃거리는 게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생각이나 감흥이 도외시 된 채 서양의 미술과 별다를 바 없는 작품들이 현대 회화를 빙자해 좋은 작품인 듯이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한국성을 찾는 것을 진부한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매도하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술과 정신에 대한 논의 자체를 마치 오래 전부터 잘못된 것을 또다시 이야기하는 것처럼 고루하게 생각하는 미술인들이 허다하다. 게다가 한국의 미술을 이야기하고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주장을 마치 우물 안 개구리에 비유하는 미술 전문가도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그 집안의 혈통과 전통 및 문화가 있게 마련이다. 만약 자기 집안의 문화나 가풍이 없이 옆집의 것을 따른다면 뿌리가 불분명한 집안으로 보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예술이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면 외국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것에 관심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이는 세계화시대에 역행하는 일이기도 하다. 필자는 지금껏 우리의 전통과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미술비평을 하여왔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점은 우리의 미술과 전통을 고루하게 생각하는 작가들이 많고, 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드물다는 것이다.

 

이런 세태에 비하면 화단의 원로이기도 한 서산(西山) 민경갑(閔庚甲)의 예술 정신과 예술가로서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그는 ‘위로 선배들이 많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이제 몇 분 남지 않게 되었다.’고 아쉬워한다. 또한 화단의 어른답게, 한국 미술이 뿌리도 없이 자라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을 서슴없이 하였다.

“작가는 끝까지 정도를 가야해요. 각자 할 일을 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강박관념이 나를 괴롭히기도 했어요. 그러나 작가는 입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작품으로 보여주어야 해요.”

예술에 대한 그의 분명한 주관은 그 동안 얼마만큼 뜨거운 열정으로 다양하게 미술에 관심을 갖고 고민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민경갑은 단순하게 그림만을 그려온 작가는 아니다. 많은 미술품들에 관심을 가지고 다량으로 소장하고 있다. 이들 미술품들 가운데는 필자가 보기에 수준 높은 것들도 여러 점 있다.

 

거실에 들어서자 턱 버티고 위용을 자랑하는, 중국의 제사용 청동기 중 대표적인 헌(獻)이 눈길을 끌었다. 진품 여부를 떠나 정교함과 중후한 분위기를 더욱 실감나게 해주었다. 이러한 면들이 민경갑의 그림에 고스란히 반영될 것만 같았다.

 

거실의 중앙에 있는, 이삼백호는 족히 될만한 크기의 산수 그림은 자신의 미술 전반의 깊이를 담고 있는 듯하여 눈길을 끌었다. 화려하면서도 경박하지 않는 채색의 그림이 아마도 서산의 그림의 특색일 것 같다.

 

작가의 그림에는 화려함 속에 은은함이 배어 있는데 이는 아마도 서산이 그동안 우리의 전통 문화와 삶 그리고 선조들의 미감에 많은 관심을 가져온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의 자연이 서산의 작업세계의 원천이 되고 있다. 작가는 우주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을 것만 같은 한국의 자연에서 자신의 예술적 모티브를 찾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자연과 인간의 거역할 수 없는 성(性)과 정(情)의 진리를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자연에는 인간사의 모든 것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 특히 서산이 즐겨 그리는 한국적인 산에는 그러한 상서로움과 서기가 담겨져 있다. 자연의 신비로움과 고귀함,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보이지 않는 기운과 힘은 우리를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게 바로 서산의 그림에 담긴 내면의 힘이 될 것이다.

작가 민경갑은 얼마 전부터 뜻밖의 악성 종양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남다르게 강한 의지로 누워서라도 그림을 그려왔으며, 대작을 포함하여 여러 점을 그렸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게 곧 쉬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그는 젊은 세대와 함께 어울려 많은 창작을 하고 싶어 하는데, 그의 활동력 속에는 자기 개발에의 의지와 솔직 담박함이 함께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투병 중이면서도 꿋꿋하고 자신감 넘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육체의 병마도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잠재울 순 없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을 압도하는 서산의 열정을 통해서 앞으로 더욱 큰 작가로 나아갈 수 있는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작업에 있어서만큼은 아직도 기나 긴 여정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 ■ 글=장준석(미술평론가)

<약력>
1933년 충남 논산 출생
대전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개인전>
미국 뉴욕 한국센터갤러리 초대
현대화랑 초대
부산국제 문사 초대

<주요 경력>
1963 국전 추천작가
1966 5·16 신인예술상전 심사위원
1972~79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재직
1974~78 국전 심사위원
1979~82 동덕여대 미술대학 교수 재직
1979 국전 심사위원
1979 서울특별시 문화상 심사위원
1985 현대미술대전 심사 부위원장
1985 불교미술대전 심사위원
1987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객원교수
1988 중앙미술대전 심사위원
1988~89 서울시 시정 자문위원
1988 무등미술대전 심사위원
1988~89 서울특별시예술위원회 위원
1990~97 원광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1992 제3회 한국화대전 심사위원장
1994 전북도전 한국화분과 심사위원장
1998 원광대학교 교수 정년퇴임
1998~현 재단법인 동양문화재단 이사
2000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선출
현재 단원미술관 관장
단원미술대전 운영위원장

<수상 경력>
원광대학교 학술공로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마니프 국제아트페어 초대작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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