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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식칼럼] 실패한 6.25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58년째를 맞았다.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된지 2년이 채 안된 시점인데다 1946년 1월 15일 창설된 국방경비대는 오합지졸이나 다름이 없었다.

 

반면에 1948년 2월 8일 창설된 인민군은 소련제 전차와 중화기로 무장하고 사단급 기동훈련까지 마친 상태여서 남북의 실전능력은 비교 대상이 아니였다. 6월 25일 새벽 4시,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인민군 제2군단사령부 막사에서 작전참모 이학구 대좌는 군용전화에 대고 “폭풍”이라고 외쳤는데 이것이 전쟁 개시 명령이었다.

날조한 ‘북침’ 성명과 연설로 남침전쟁 호도

이날 아침 북한 내무성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이른 새벽에 남조선 괴뢰정부의 소위 국방군들은 38선 전역을 걸쳐 38이북지역으로 불의의 침공을 개시하였다. 불의의 침공을 개시한 적들은 해주방향 서쪽에서와 금천방향에서 철원방향으로 38이북지역에도 1㎞ 내지 2㎞까지 진입하였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내무성은 38이북지역으로 침입한 적들을 격퇴하라고 공화국 경비대에 명령을 내렸다.

 

다음날 6월 26일에는 김일성이 방송 연설을 통해 남한의 선제 공격을 격퇴하기 위해 반공(反攻)으로 넘어 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매국적인 리승만 괴뢰정부의 군대는 6월 25일에 38선 전역을 걸쳐 이북지역에 대한 전면적 진공을 개시하였다.

 

"용감한 공화국 경비대는 적들의 진공을 항거하여 가혹한 전투를 전개하면서 괴뢰정부 군대의 진공을 좌절시켰다. 조선민주주의공화국 정부는 우리 인민군대에 결정적 반공 격전을 개시하고 적의 무장력을 소탕하라고 명령하였다."

 

내무성 성명과 김일성의 연설은 친북세력이 주장하는 ‘북침’ 날조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이후 파죽지세로 진격한 인민군은 6월 28일 서울 함락에 이어 수원, 대전, 대구까지 물밀듯이 내려갔다. 그 사이 우리측은 7월 1일 유엔군 지상부대가 부산에 상륙하고 7월 12일 국군통수권을 미국에 이양하는 대전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정부는 대전을 거쳐 부산으로 피난 가야만 했다.

 

9월 15일 맥아더 원수가 이끄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서울을 수복했으나 10월 25일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면서 평양을 거쳐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유엔군은 1951년 1월 4일 서울을 다시 북에 내주고 후퇴해야했고, 정부는 또 다시 부산으로 옮겨 갔다.

 

국군과 인민군이 일진일퇴하는 사이 7월 10일부터 26일까지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시작되었지만 난항을 겪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하면서 단독 북진을 주장했고, 6월 18일에는 반공포로 2만5천여 명을 석방했다. 이는 세계 전생사에서 유례가 없는 이승만 특유의 용단이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되었으나 전쟁 당사자인 한국은 불참했다. 이것이 한국전쟁의 전모다.

6.25 전쟁의 역사적 의미는 해방으로 자주독립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분열과 소련의 한반도 공산화 정책, 김일성의 영웅주의가 전쟁을 일으켜 반세기 동안 정전체제를 존속시킴으로써 국력의 낭비, 통일의 장애물이 됐다는 데 있다. 또 하나의 교훈은 지도자의 오판이 피해를 키웠다는 사실이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오판이 남긴 ‘분단의 비극’

북한은 남침하면 남한내부의 공산세력이 봉기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한국인들의 문제임으로 미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도 오판이었다. 유엔은 북한의 남침을 ‘평화 파괴’로 단정하고 참전했다. 국군과 남한 국민의 호국 의지를 과소평가한 것도 실수였다. 결국 김일성과 스탈린이 꾸민 한국전쟁은 실패했다.

1953년 전쟁 당사자인 한국이 빠진채 체결된 반쪽짜리 휴전 협정이 남아 있는 한 6.25 한국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6.15와 10.4 남북공동성명을 통해 북한과 유화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북한은 노골적인 비방을 일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미 봉남’으로 한국을 따돌리고 있다. 통일의 길이 멀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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