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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칼럼] 의미 못 살리는 정당공천제 폐지해야

 

올 초부터 소문처럼 떠돌던 일이 현실로 드러났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지방의원들 중 정당의 비례대표의원들이 임기 4년의 의정활동을 반으로 나눠서 하기로 해 전반기에 활동하던 의원들이 사퇴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 얘기가 돌 때만 해도 ‘설마’했다. 그런데 파주시의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한나라당 비례의원이 공천을 받기도 전에 ‘2008년 6월 30일자로 사직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쓴 것이 사실이었음을 확인시켰고, 이는 파주시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강원도, 경상도 등지의 한나라당 여성비례대표에게 일관되게 일어난 것으로 언론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2006년 치러진 제5대 지방선거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서의 책임정치 실현을 이유로 기초자치단체장 뿐 아니라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을 인정하는 개정된 공직선거법이 적용된 첫 선거였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도입과정에서 중앙정치가 지방정치를 압도할 것이고, 이는 지방의 중앙에 대한 예속을 가속화하는 현상을 초래하여 궁극적으로 지방정치의 본질, 풀뿌리 민주주의를 훼손할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공천과정의 문제 등이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지방정치에도 선거 참여와 당선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스스로의 이해를 대변하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도가 도입된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의견들이 있었다.

특히 각 정당들이 비례대표 홀수번호를 여성에게 배정하여 정치영역에서 여성의 과소대표성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은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도에 대한 무수한 비판과 평가 속에서도 그나마 성과로 꼽히는 것이었다.

지방의회는 의원 정수의 10%를 비례대표로 두게 되어 있다. 기초의회의 경우 대부분 규모가 작기 때문에 비례대표에 할당되는 의석은 1~2석에 불과하고, 전통적으로 양당구도의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2006년 지방선거 결과 대부분 1번인 양 당의 여성비례후보들이 의회에 대거 진출했다. 기초의회 여성의원 비율이 2002년 2.2%에서 2006년 선거이후 15%로 그 비율이 6배 이상 증가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제도 도입 2년이 지난 지금, 제도 도입과정에서 제기되었던 우려와 걱정은 분명해지고 있으며, 그나마 성과였던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 대변, 여성의 과소대표성 문제 또한 한나라당의 오만으로 그 의미가 퇴색해가고 있다.

비례대표 2년씩 임기 나누기 문제에 대해 ‘당시 지방선거에서 당에 기여한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자는 도당의 방침에 따른 것’이라는 경북의 한 의원의 말은 한나라당의 비례대표에 대한 인식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비례대표는 애당초 사회적 약자들, 여성들의 몫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나라당은 여성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여성에게 비례대표 1번을 줌으로써 여성을 위한 정당이라는 이미지와 명분은 살리고 뒤로는 여성후보들에게 2년만 하고 조용히 물러나겠다는 각서를 받았다.

나는 이번 기초의회 비례의원 임기 반 토막 문제는 분명하게 여성문제라고 규정한다. 만일 1번이 여성이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소나마 여성문제를 해소해 보고자, 여성의 정치적 과소대표성 해소를 통해 여성문제 해결에 접근해 보고자 마련된 제도의 시행과정에서 조차 항거할 수 없는 조건에 놓인 여성후보들에게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심지어 각서까지 받아서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난감하다. 한나라당은 여성유권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당장 중단하고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기초의회에 정당공천제를 도입하면서 가장 큰 명분은 책임정치였다. 정치적 책임성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 미리 후보들의 능력과 자질을 충분히 검토하고 공천하는 과정을 통해서, 의원들의 의정활동 과정의 책무성을 강화하는 장치를 통해서, 또한 스스로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적 진출 보장을 통해서 의원들과 의정활동의 질을 높여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사람이 정당 내 자정시스템을 통해 걸러지지 않고 있고, 지방의회 하반기 원 구성은 사상 최대의 권력 쟁탈전으로 변해 국회에서나 보던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생활정치의 공간에서 목도하고 있으며, 여성비례대표 의원들에게는 무자비한 사퇴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누가 정당공천제를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미 국회에서도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국회는 당리당략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루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고 그것을 위한 최선의 방안은 무엇인지를 찾는 기본에 충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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