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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다양성의 승리

출신지역 따지는 풍토여전
변화에 대한 거국적 수용을

 

단풍이 절정이다.

점심 식사 후 잠시 동안 단풍놀이를 하던 중, 저물어가는 가을 정취에 대한 감상이 오고 갔다. 함께 걷던 무리 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아직 푸릇한 소나무만 없다면 오색 단풍이 더욱 아름답겠다’고 말하였다. 무리 중 일부는 그말에 공감을 하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필자는 이들과는 생각이 좀 달랐다. 노란 은행잎과 빨간 단풍잎이 더욱 빛이 나는 이유는 바로 아직도 푸르름을 간직한 채 섞여있는 사철나무 때문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이들이 전부 어우러져야만 더더욱 오색이 영롱할 수 있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 모두가 동의하였고 다시 단풍에 대한 감상은 계속되었다.

다양성이 어우러지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는 굳이 단풍놀이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며칠 전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도 깨닫게 된다.

아브라함 링컨의 노예 해방 이후 137년만에 미국의 수장이 유색 인종으로 바뀐 인류사적 사건은 바로 미국식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유색 인종인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다는 사실 외에도 그보다 더 우리를 경이롭게 하는 일은 바로 지금까지 미국의 역대 대통령 선거보다도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한 사회적 수용도가 훨씬 높았다는 사실이다.

경쟁자였던 존 매케인(John Sidney McCain III)의 허심탄회 한 패배 시인 연설에서부터 전 국가적 축제 같았던 선거 이후의 분위기까지, 그리고는 한적한 시골의 백인 거주 지역에서부터 대도시의 슬럼가에까지 흑인 대통령의 선출은 미국 전체를 경이와 희열의 연속으로 만들었다.

더욱 흥미 있었던 점은 이 같은 기쁨이 인종의 벽을 뛰어넘은 것은 물론, 모든 구성원에게 미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재확인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랑스러운 패배와 민주주의 가치 실현이 미국의 국민들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심어주고 있다.

과연 지금으로부터 수 십년 수 백년 쯤 뒤,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오바마와 같은 이주민의 자녀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미국과 우리는 애초 국가의 정체성 자체가 다르기에, 아무래도 오바마 같은 대통령이 나오리라는 기대는 실현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꼭 이 같은 사례가 아니라 당장 지역 간 갈등만을 놓고 보더라도, 출신 지역에 따른 정치세력의 고착화는 아무리 백년이라는 성숙의 시간이 있다 해도 별로 바뀔 것 같지 않다.

바로 이러한 점이 우리를 좌절하게 한다. 다양성에 대한 수용, 다름에 대한 인정, 그리고는 평화로운 공존으로부터의 한 단계 성장이 바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다.

편협한 지역주의나 당파적 이해득실만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정치 행위로서 자리를 잡고 있는 현실 속에서, 보다 상위의 가치에 대한 열망과 그를 향한 불굴의 의지, 그리고 변화에 대한 거국적인 수용이 이뤄지는 것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바로 이와 같은 요소 때문에 인종이나 배타적 이기심을 타파하고 새로운 변화를 향해 진일보 하는 미국 선거에 신선한 감동을 느끼는 것이다.

뛰어난 리더의 이성적인 비전 제시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승리, 이 모든 것이 지난 2년 여 기간 동안 미국에서 이루어진 변화를 향한 몸부림이었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원천은 바로 다양성에 대한 수용과 승인이었다.

이제는 우리도 국내 체류 외국인이 100만 명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남한 인구 5000만 명 중 2%가 외국 출신인 것이다.

이와 같은 속도로 외국인의 유입이 이루어지는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주민 출신 내국인이 전 국민의 10%를 차지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도 심각하게 이와 같은 다양성을 과연 사회적으로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하는 때이다.

지역주의도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환경에서 이주민가정에서 성장한 구성원이 겪게 될 고통은 더욱 끔찍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137년 걸려 이룩한 성취를 우리는 어쩜 결코 이루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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