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제언] 미네르바의 부엉이 그리고 바보
[독자제언] 미네르바의 부엉이 그리고 바보
  • 경기신문
  • 승인 2009.06.0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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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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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계존 (수원여자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면 우리는 불안에 휩싸인다. 상궤(常軌)로 대처하지 못하고 온몸의 전율을 느낀다. 종내 그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을 때론 이성으로 때론 직관으로 설명하여야만 한다.

‘땅거미가 잦아들면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아오른다.’ 헤겔의 명언이다. 일상의 수고로움을 마친 이후 이를 둘러보는 철학적 성찰을 미네르바의 부엉이로 상징화한 것이다. 익숙하지 않음으로 인해 큰 혼란에 처할 때 이에 대처하는 이성 또는 직관에 의한 지혜가 미네르바이고 부엉이인 것이다.

경제만은 살리겠다는 국정 지표를 제시한 정권이 있었다. 한데 정권 초부터 기대와는 다르게 국제 금융위기로 경제는 끝없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위기 상황이었다. 모두가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이 즈음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미증유(未曾有)의 사태를 정확히 진단했다. 그리고 다양한 전망을 제시했다. 그의 진단과 전망은 이후 그대로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이 열광했다. 나아가 그를 경제 대통령으로 추앙했다. 바로 인터넷의 미네르바였다.

경제 살리기라는 허구가 우리 사회에 죽은 망령처럼 다시금 출몰했다. 권력욕의 다름 아닌 정치적 수사였건만 우리 모두는 잠시의 헛된 기대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 땅거미가 잦아들어 그 스산함을 느끼던 순간이 다가왔다. 늘 사소함에도 북새통이던 수많은 언변이 일순 정적에 빠졌다. 허위의 현실을 직면하기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지혜의 성찰자가 미네르바였다. 모두가 익명의 미네르바를 찾으려 했다. 그에 대한 온갖 소문과 억측이 이어졌다. ‘외국 유력 대학 출신자이다’, ‘저명한 외국 금융전문기관 출신이다’ 등등.

집권자의 경제적 경륜을 뛰어넘어 그는 정권의 가시로서 주목되었다. 그래서 사정기관은 일부 오류를 문제로 삼아 범법자로서 그 소재를 추적했다. 마침내 미네르바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는 전문대 출신의 무직자로 밝혀졌다. 이후 우리 사회전반, 특히 보수 언론에서는 보잘 것 없는 젊은이에게 속았다며 그를 사기꾼인 양 몰아갔다. 그저 학력 그리고 직업 없음만이 화제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를 둘러보는 성찰 그리고 지혜마저도 학벌이 있고 높은 경력을 갖춘 자들의 전유물이다. 그들만이 우리 사회를 성찰할 수 있다. 학식과 권력의 오만이 극에 달한다. 어찌 성찰과 지혜가 학력이나 자리에 비례한다는 말인가. 학벌 등에 의한 극단적 분별이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박혀 있음에 통탄한다. 노무현, 그를 생각한다. 그가 고향의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땅거미가 잦아들었나 보다. 그래서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아올랐나 보다.

바보 노무현. 바보라 불려지는 것이 가장 좋았다는 진정한 바보. 바보는 눈치를 보지 않는다. 바보는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다. 바보는 관례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바보는 온전히 자기 안의 소리인 양심과 도덕에만 귀 기울인다. 그리고 그 소리에 의한 소신으로 언행(言行)할 뿐이다. 그가 들은 자기 안의 소리 그리고 그 소신은 무엇이었을까? 그 넓이와 깊이를 쉬 가늠할 길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신한다. 그는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짐으로서 날아올랐다. 그리고 우리 정치에 아니 우리 사회 전반에 성찰의 기회를 주고자 날아갔다.

그는 일생 내내 비주류였다. 심지어 권좌의 정점에서마저도 비주류였다. 그가 비주류였음은 단지 상고 출신의 대통령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전라도 정권(?)에 입양된 경상도 출신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구시대의 막내여서도 아니었고, 좌로 편향된 인물이어서도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할 때 그보다는 분명 몇 걸음 더 자신의 소신에 따라 시대정신을 앞서 간 바보였기 때문이다. 대단한 선각자여서가 아니다. 그는 정치적 격동의 한가운데서도 결코 정치 초년시절의 소신에 반하여 굴신(屈身)하지 않았다. 그리고 줄곧 ‘바보’들의 세상을 지향하여 그 건설을 자신의 소신으로 실천하는 지난한 정치 여정을 보냈던 것이다.

부엉이 바위에 선 그의 마지막 처연했을 모습을 떠올린다. 그의 인생에 참 많은 수고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 수고로움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로 날아오름으로써 마무리되었다. 이제 성찰자로서 그가 우리에게 던진 지혜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학력, 지역, 사상 등의 분별을 극복해야 함을. 그리고 진정 밥보들의 세상이 되어야 함을. 故 노무현 대통령의 부엉이 바위에서의 성찰로 우리 모두가 진정한 지혜를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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