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 배움의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세계인 배움의 장소 백남준아트센터
  • 경기신문
  • 승인 2009.06.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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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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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함을 파격으로’
비디오예술의 어머니
▲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한국에서 백남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 그의 예술을 제대로 안다고 여길 사람은 백남준 이외에 세상에 없는 것 같다.

한 천재의 예술에 새겨진 지식(방대함)과 깨달음(심오함)과 실천(파격성)의 삼위일체를 도저히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창조성의 절대조건으로 지식의 융합 혹은 통섭이 유행어가 되고 있지만, 인류의 지적재산으로서의 동서양의 ‘신화’를 테크놀로지와 깊숙이 결합한 백남준의 큰 비전, 큰 마음, 큰 실천에 비할 바가 못된다. 현대문명 마저도 신석기 혁명의 토대 위에서 개화한 것이며, 이에 비할 때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 IT 혁명은 더없이 작아 보인다.

백남준은 빛나는 문장을 많이 남겼다. “나는 TV를 갖고 작업할 때마다 신석기를 떠올린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자연이 아름다운 까닭은 자연이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이 (그냥) 변하기 때문이다”, “영원성-숭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병이다” 등. 우리는 음악기기란 악보에 기재되어 있는 음들을 소리로 만들어내는 데만 사용되는 것이라는 일반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백남준이 서양 문화의 총아인 파아노에 전구, 소리기기 따위를 끼워넣고(놀랍게도 피아노에서 거문고, 가야금 소리가 난다), 건반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이고, 피아노의 음 전체가 예측할 수 없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소리를 위해 피아노를 고상한 독일 청중들 앞에서 쓰러뜨렸을 때, 평소 그를 호의적으로 바라보던 비평가들조차 정서적 충격과 거부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굴하지 않았다. ‘음악평론가의 입에 팬티를 처넣어라’라는 글을 자신의 악보에 새겨 넣었다.

식민지와 전쟁으로 나라 전체가 초토화되어 세계에서 최빈국이었던 시절에 바깥 세상에 나가 한국인 관객이 한명도 없던 무대에서 ‘신사 숙녀 여러분, 이처럼 화창한 날씨에 프럭서스 전시에 래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한글로 쓰고, 똑똑한 백인들 사이에서 “짐은 곧 황화(黃禍)다”라고 외치고, 예순이 넘은 나이에 백악관의 세계 최고의 권력자 앞에서 자신의 바지가 무릎까지 흘러내리게 했던 백남준의 기개와 정신력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세계 역사상 잠시 반짝이다 사라져간 크고 작은 천재들이 많다. 게다가 그의 위업을 증언할 사람들이 대부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고국땅을 밟은 후 20년 동안 한국은 비디오 조각에 취했고, 그의 신화를 홍보하거나 명성을 이용하기에 급급했다.

20세기 예술의 최대 난제인 프랑스의 뒤샹 같은 천재를 세상이 인정하는데 출생후 100년이 걸렸다. 백인 혈통에 전세계 문화의 바티칸인 프랑스에서 출생해도 그렇게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면 백남준은? 20세기 동서양의 ‘모든’ 예술가들을 통털어 서양 근대의 바깥으로 통하는 확실하고 단단한 출구를 찾아낸 인물은 백남준이 유일하다. 백인들은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백남준 예술의 지성사적 의미는 마네, 뒤샹, 보이스, 워홀, 케이지라는 대가들을 모두 넘어간다. 프랑스의 평론가 장 폴 파르지에의 말처럼, 그는 예술의 진정한 어머니였다.

하지만 백남준아트센터는 장대한 역사적 미션에 비해, 그 바탕이 너무 작고 소심하였다. 원주민 의식과 낡은 제도적 관행을 타파하기. 전 세계인들의 관심과 배움의 장소! 그것이 ‘백남준이 오래사는 집’의 모토이자 제도가 되야 한다. 백남준은 인류의 문화 유산인 까닭이다.

프로필
▶ 1957년 출생
▶1987년 서울대 미학과 대학 원 졸업
▶2005년 올해의 예술상 수상
(전시기획부문·한국문화예 술위원회)
▶2008년 <나우 점프> 백남준
아트센터 개관기념 백남준
페스티발 총감독
▶2008년~현재 백남준아트
센터 관장, 계원디자인예
술대학 매체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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